특집
임시의정원 헌법과 제헌헌법의 발전과 계승
— 글. 김광재(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
대한민국의 제헌절은 7월 17일이다. ‘제헌制憲’이란 헌법을 만들어 정했다는, 즉 헌법을 제정·공포·시행했다는 뜻으로, 1948년 7월 17일은 근대적 의미에서의 입헌주의헌법이 대한민국에 등장한 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제헌헌법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천재적 재능을 소유한 몇 사람의 창조물인가.
1948년 제헌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천명했다. 오랜 기간 왕정(군주제)이었던 조선과 대한제국에 이어 곧바로 일제에 의해 35년 동안이나 국권을 침탈당하여, 외관상 공화제나 민주주의를 논할 장이 없어 보이는 대한민국이, 광복 후 채 3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당당히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주의를 천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근대입헌주의헌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제와 공화제가 우리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헌법(헌장)’이라는 이름의 문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19년 4월 11일 공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였다. 여기서 또다시 의문이 제기된다. 일제의 국권침탈이 자행되던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왜 임시헌장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선언했을까.

대한민국 임시헌장(1919. 4.)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3・1운동의 영향으로 탄생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3・1운동은 독립운동으로 출발하여 군주정을 혁파하고, 공화정이라는 체제의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키겠다는 국민적 열망의 표출이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건립되었다. 이러한 혁명적 성격으로 인해 1944년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는 3・1운동을 ‘3・1대혁명’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3・1운동은 19세기 후반 이후 1919년까지 계속된 일제의 침략과 탄압에 대한 항쟁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항쟁의식은 「3・1독립선언서」 첫 구절에서 명확히 나타난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만방에 고誥하야 인류평등의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하며, 차로써 자손만대에 고誥하야 민족자존의 정권正權을 영유永有케 하노라.”
이와 같이 「3・1독립선언서」는 조선朝鮮(한국)이 ‘독립국’임과 조선朝鮮(한국)인이 ‘자주민’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것이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멸망된 상태에서 ‘독립국’임을 선언한 것은, 우선 ‘독립국’을 다시 세운다는 뜻이 담겨있고, 다음으로 그 ‘독립국’을 유지하고 운영할 ‘정부’가 필요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여기서 새로 세울 나라는 군주정이 아닌 공화정이고, 수립할 정부는 황皇(왕王)실이 아닌 공화정을 운영할, 말 그대로의 정부일 것이다. 이후 임시정부 수립과정에서 ‘조선朝鮮’은 ‘대한민국’으로, ‘조선인朝鮮人’은 ‘대한인민大韓人民’으로 확립되었다. 나아가 독립국임과 자주민임을 선언하는 주체가 ‘오등吾等’, 즉 ‘우리’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사전적 의미는 “말하는 이가 자기와 듣는 이, 또는 자기와 듣는 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인데, 군주제와 신분제하에서는 ‘소신小臣들’, ‘소인小人들’이 있을 뿐 모두가 평등한 ‘우리’는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는 군주정 하의 신민臣民도 아니고, 신분제 하의 반상班常도 아니며 서로 평등한 남녀노소, 각계각층 모두를 포함하는 ‘인민人民(국민)’이라 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공포 기념우표(1948. 8. 1.)
이런 혁명적 성격을 지닌 3・1운동 직후, 1919년 4월 11일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제정・공포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한인들이 세운 국가 중 최초로 “민주공화제”라는 체제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헌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이후 대한민국헌법사의 기초 골격이 된 헌법이라 할 것이다. 이 임시헌장은 1919년 한성漢城에서 기의起義한 만세운동 즉, 3・1운동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선포문 및 10개조의 본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행 대한민국헌법의 기반인 민주공화제, 평등원칙(평등권) 및 기타 국민의 기본권,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천명, 선거권 및 피선거권, 의정원(국회)을 바탕으로 한 대의제 등 중요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물론 당시 여타의 임시정부들이 여전히 존재했던 현실 및 시간적인 제약으로 정부조직에 대한 자세한 조문 없이 제2조에 포괄적으로 규정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제1조의 민주공화제, 제3조의 일체 평등, 제9조에서 언급하고 있는 신체형・사형제의 폐지 등은 당시의 시대상에 비추어볼 때 매우 진보적이라고 볼 수 있다.
| 헌법 체계 | 1919.4.11. 임시헌법 |
1919.9.11. 임시헌법 |
1925.4.7. 임시헌법 |
1927.4.11. 임시헌법 |
1940.10.9. 임시헌법 |
1944.4.22. 임시헌법 |
1948.7.17. 제헌헌법 |
|---|---|---|---|---|---|---|---|
| 국호 | 대한민국 | 대한민국 | 대한민국 | 대한민국 | 대한민국 | 대한민국 | 대한민국 |
| 민주공화제 | 제1조 | 제1조 | 제1조 | 제1조 | 제1조 | ||
| 국민(민)주권 | 제1조, 제2조 | 광복운동자(제13조) | 제1조 | 제1조 | 제4조 | 제2조 | |
| 평등 원칙 | 제3조 | 제4조 | 제2조 | 제5조, 제8조 | |||
| 자유보장 | 제4조 | 제2장 | 제3조 | 제2조 | 제2장 | 제5조, 제2장 | |
| 선거권 / 피선거권 | 제5조 | 제9조 3호 | 광복운동자(제28조) | 제5조, 제7조 | 제4조, 제6조 | 제9조 4호 | 제25조, 제26조 |
| 병역·납세 의무 | 제6조 | 제10조 1~2호 | 광복운동자(제27조) | 제4조 | 제10조 3~4호 | 제29조, 제30조 | |
| 국제평화주의 | 제7조 | 전문 | 전문, 제6조 | ||||
| 입법부조항 | 임시의정원(제2조) | 임시의정원(제4장) | 임시의정원(제3장) | 임시의정원(제2장) | 임시의정원(제2장) | 임시의정원(제3장) | 국회(제3장) |
| 행정부조항 | 임시정부(제10조) | 국무원(제5장) | 임시정부(제2장) | 임시정부(제3장) | 임시정부(제4장) | 임시정부(제4장) | 정부(제4장) |
| 대통령조항 | 임시대통령(제3장) | 대통령(제4장 제1절) | |||||
| 사법부조항 | 법원(제6장) | 심판원(제5장) | 법원(제5장) |
〈표〉 제헌헌법과 임시헌법의 체계 개관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임시정부 간 통합을 이룬 후인 1919년 9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법(제1차 개정헌법)’을 공포한 이래, 1925년 4월 7일 ‘대한민국 임시헌법(제2차 개정헌법)’, 1927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약헌(제3차 개정헌법)’, 1940년 10월 9일 ‘대한민국 임시약헌(제4차 개정헌법)’, 1944년 4월 22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제5차 개정헌법)’을 각각 공포했다. 이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들과 제헌헌법의 전체적인 체계를 개관한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헌헌법은 거의 모든 사항이 임시헌법(임시헌장, 임시약헌 포함, 이하 같다)들과 중첩됨을 알 수 있다.
한편, 1919년 9월 임시헌법(제1차 개정헌법)은 앞선 임시헌장과 달리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그 임기를 규정하지 않았는데, 이로 인한 갈등이 증폭되어 임시정부는 1925년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게 된다. 1925년 제2차 개정헌법에서는 대통령제가 폐지되고 광복운동자의 장이 신설되었는데, 이는 독립운동이 장기화할 것에 대비해 실현 가능한 내용을 담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1927년 제3차 개정헌법에서는 기존의 인물 중심의 정부형태가 아닌 당 중심의 운영, 즉 이당치국以黨治國을 위한 정부형태를 채택했다. 1940년 제4차 개정헌법은 과거 국무위원 가운데 호선되는, 회의체 행정부의 상징적 대표에 불과했던 주석을 행정부의 명실상부한 수장으로 변경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전망되면서 임시정부는 1944년 광복을 준비하기 위해 좌・우파가 모두 참여한 제5차 개정헌법을 만들었다. 위와 같이 1919년 4월의 「대한민국 임시헌장」부터 제5차 개정헌법인 1944년 4월 「대한민국 임시헌장」까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들은, 실질적으로는 근대입헌주의적 헌법의 특성과 독립운동가들의 근대적 민주주의사상을 담은 헌법전이며, 형식적으로는 장래 국가를 목적으로 형성된 망명정부적 성격을 지니는 임시정부의 임시헌법이라 할 수 있다.
1948년 제헌헌법은 전문에서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선언했고, 제1조 제1항에서는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헌장」부터 이어온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표방했다. 또한 제헌헌법은 전문과 제1조 제1항뿐만 아니라 그 체계와 용어, 기본원리, 기본권 조항 등에서 임시헌법과의 연속성이 발견된다.
결론적으로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태동해 5차례의 개정을 거친 ‘대한민국 임시정부헌법’은 1948년 7월 국회에서 의결된 제헌헌법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고, 나아가 제헌헌법의 모체였다고 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1948.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