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泰國先生의 長逝
一身을 맛침내 國家를 爲하야 犧牲한 二十年 一貫한 國士의 生活
病患危重을 傳하던 安泰國先生은 去十一日 下午八時에 中國紅十字醫院에서 逝去하다 先生의 病患은 熱病인데 多年 獄中에 게시여 敵의 慘酷한 惡刑을 當하야 心臟을 傷하시엿던바 今에 心臟內膜炎이 俱發하야 드듸여 逝去하심에 至함이라 臨終時에는 先生의 惟一의 知己 安島山先生과 同院醫師 金昌世氏가 最終의 看護를 盡하다
先生의 五十年의 生涯는 全혀 愛國心의 結晶이오 國家와 民族을 爲한 犧牲의 記錄이라 眞實하고 正直한 先生의 性格과 名譽와 地位에 超然하야 前後七年의 獄中苦楚와 出獄後의 敵의 迫害를 甘受하시고 二十年 一貫하야 오직 一心國家를 爲하야 奮鬪하신 先生의 誠忠은 實로 眞正한 國士의 面目을 先生에게서 볼지라
當時 先生과 國事를 共圖하던 諸氏와 五百餘의 當地 在留同胞는 이 不意의 訃報를 接하고 罔知所措하야 哀悼를 極하다
先生의 略歷
先生은 平壤人이라 先生은 二十年前부터 革新을 主唱하야 梁起鐸, 李東輝, 安昌浩, 全德基, 李東寧, 李甲, 申采浩, 諸先輩와 함끠 國事에 盡瘁할새 先生의 性格과 忠誠은 當時붓터 一般國民의 信望하는 바이엿섯다 先生이 三十四歲時에 新民會의 西道總監으로 被任하고 그 後 靑年學友會를 發起하야 國民性의 根本的 改善에 努力하다 大成學校에서도 先生이 重要한 任務를 맛흐시고 京城과 平壤에 太極書館을 經營하야 先生이 親히 主人이 되다 太極書館은 外面書館이나 內容은 獨立黨의 幹部이엇섯다 國恥後 先生은 安命根事件과 寺內暗殺事件과 其他 種種의 嫌疑로 前後 七年間을 獄中에서 보내시다, 寺內暗殺事件에는 敵의 惡刑이 더욱 先生에게 甚하엿스나 끗까지 不屈하시는 先生의 膽勇은 內外人의 크게 놀낸 바이엿섯다 出獄後 先生에게 對한 敵의 監視가 非常하야 充分한 活動을 못하시고 年前 琿春에 移居하시엿다가 今般獨立運動에 中俄領統一의 뜻을 품으시고 政府所在地로 오시엿던 것이라 先生은 今四十六歲라
「오직 誠衷」의 先生
나 보는 韓人中에는 惟一한 愛國者
安島山先生談
連日 終夜看護에 盡力하다가 마침내 訣別을 當한 安島山先生은 얼골에 沉痛의 빗을 띄고 悄然히 語하야 曰
「名譽, 地位, 權力 이 모든 것에 조금도 거리낌업시 오직 誠衷을 다하야 二十年을 終始如一하게 爲國奮鬪하시는 安先生의 性格과 熱誠은 내 입으로 다 말할 수 업소, 나 보는 韓人中에는 진실로 惟一한 愛國者요, 先生의 多年 獄中生活과 敵의 惡刑이 先生의 그 조턴 얼골과 體格을 損하게 하고 今에 또 도라가시게까지 한 것이오.」
「先生은 또 精神上 苦痛을 만히 밧앗소, 先生의 同志인 全德基牧師 李甲氏, 先生의 心腹인 宋鍾元, 金根瀅, 諸氏의 逝去는 先生에게 非常한 精神上苦痛을 주엿소」
島山先生은 다시 安先生의 오신 內容에 對하야
「先生은 이번에 中俄領의 大同團結에 對하야 政府와 議論하려고 오신 것이오, 政府에서는 先生에게 政府內에서 무슨 일을 보아달나고 請하엿스나 先生은 도라가서 中俄領의 統一을 爲하야 힘쓰겟노라 하고 固辭하엿소, 그래서 不遠間 政府特派員으로 指定하야 發程하시랴던 터에……」
琿春 잇는 先生의 本宅에는 先生의 夫人과 二男一女가 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