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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 新政府를 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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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 상해 국한문판

1926년 9월 3일 (제192호)

新政府를 祝함
  • 소장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기사유형 임시정부 기사
  • 면수 12면
  • 단수 1단
  • 필자 星

新政府를 祝함

故臨時大統領朴殷植先生이 民國 七年七月七日 舊臨時憲法終命同時에 盧閣을 이끌고 局에 물너난 뒤에 李相龍氏의 國務領半年과 臨時議政院議長崔昌植氏의 臨時執政半年이 비록 記錄上으로 臨時政府의 系統을 續存하엿다 하나 그러나 李領은 閣이 업고 崔政은 名뿐이라 臨時政府 그것은 事實上空虛임을 免치 못하야 千辛萬苦한 憲法改定이 無意味한 作劇에 도라가고 大業의 前途난 暗澹하기 짝이 업더니 洪領이 出任하야 新憲의 緣故者인 李趙崔諸員을 中心으로 新憲施行의 第一次臨時政府가 組成되니 新局面은 이에 展開되엇고 그 抱負와 企待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本紙난 또한 洪領을 歡迎한 붓으써로 이어 洪閣의 成立을 祝하게 됨을 깁버하지 아니치 못하노라

비노니 洪閣이어 成功하소서!

大韓民國獨立萬歲!

李財長의 來歷

財長李裕弼氏의 號난 春山이니 當年四十二의 健夫라 氏난 平北義州의 出生으로 일즉 京城에 留學하야 中學과 法學專門을 卒業하엿스며 初年에 敎育에 從事하다가 敵의 忌斥을 바더 絶島流配를 當하엿섯스나 繼續하야 國事를 爲하야 일하다가 三一運動에 上海로 견너와 元年부터 內務部財務部의 局長次長等要職과 議政院副議長을 지나고 一時在野하야 民團長學校長을 마텃다가 民國六年朴殷植閣애 內務總長이 되고 이어 七年李相龍閣에 國務員이 되엇든이라

氏난 一大肥丈夫로 一見에 泰山盤石의 感이 잇스며 稟性이 沉毅果敢하고 思慮가 穩健着實하야 現時斯界의 器重하난 人材의 하나인대 일즉 皆勞皆兵의 主張으로 勞兵會를 創立하야 相當한 成績을 보이고 지금 또한 皆合을 力倡하야 統一에 努力하난 中이라 新閣을 爲하야 斯人의 健鬪하난 績은 보고져 한다

趙法長의來歷

法長趙尙燮氏의 號난 海蒼이니 李財長과 同庚同鄕되난 이라 그난 일즉 平壤神學校에 學하야 牧師가 되어 예수의 使徒로 福音을 傳하다가 三一運動에 蹶起하야 臨時政府의 使命으로 間島等地에서 冒險的機務에 活動하엿고 民國五六年初에 臨時議政院議長이 되엇다가 同年에 朴殷植閣의 學務總長이 되엇던이라

氏난 그 體格이 鶴瘦長直함과 가치 그 性格도 爽直하며 또 그 出身이 敎會인 것만치 그 心思난 純一하고 有事난 勤實하야 多數人의 特殊한 信任을 밧난이다 그러나 그난 어듸로 보든지 牧師態보다난 軍人性質이 좀 더 만흔 이라 그난 恒常數人들에게 「우리 獨立運動은 곳 主의 뜻이라 밋난 者난 맛당히 이것부터를 힘써야 한다」가르치고 아울너 「無形한 사탄은 道로 누르고 有形한 倭놈은 칼로 버히라」부루짓난다 우리난 또한 일즉 軍人牧師의 稱呼를 밧든 이 牧師國務員의 躍躍한 活動을 눈씻고 보려 하다

崔內長의 來歷

內長崔昌植氏난 곳 本社主幹이니 號난 芸丁이오 年은 三十五오 京城人이라 早年에 日本과 中國에 游學하고 英年부터 報筆과 敎鞭을 자빗스며 또한 自小로 國事을 爲하야 자조 敵獄에 辱을 當하다가 三一運動에 機要를 띄고 上海로 와서 民國元年에 第一次李承晩閣의 秘書長이 되고 三四年에 俄京에 가서 國際革盟會合等에 參與하고 도라와 六年에 臨時議政院議長이 되여 至今까지 繼續하야 오난 中國務領李相龍免職後의 政局을 擔當하야 만흔 難關을 突破하고 이 地步에 達게 하엿스며 또 一方으론 獨立新聞을 經營하야 公論을 指導하고 三一公學을 主持하야 人材를 養成한다

君의 爲人은 그 自讚과 가치「小軀大志」「有爲無畏」그러하며 그의 主張은 곳 本紙의 主張 그것이다 記者난 洪閣에 사람 잇슴을 깁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