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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백암 박은식 선생 서거 100주년 특별기획전〈역사로 지켜낸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집

백암 박은식 선생 서거 100주년 특별기획전〈역사로 지켜낸 대한민국 임시정부〉

— 글. 이현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학예연구사)


프롤로그

지난 11월 1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백암 박은식 서거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기획전 〈역사로 지켜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개막했습니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역사학자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제2대 대통령이었던 백암 박은식을 비롯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저술한 역사서를 전시합니다. 이들이 집필하고 간행한 역사책들은 국제연맹에 제출되기 위해, 또 왜곡된 한국사를 바로잡고 이를 외국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주요 인물들은 우리의 역사를 지켜내고자 노력하였고, 그러한 노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키고 이끌어나가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프롤로그. 한국 근대 역사학, 항일투쟁과 함께 발전하다

조선 후기 이래 한국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국사自國史를 서술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갑오개혁 이후 각종 국사교과서가 편찬되면서 근대적 역사서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신채호는 이순신과 같은 애국 명장에 관한 전기를 써서 애국심을 고취하고, 「독사신론」 등의 논설을 통해 역사를 애국심의 원천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처럼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한국의 근대 역사학은 일제의 침략이 거세지자 항일투쟁의 과정에서 겨레에 호소하는 절규와 같은 성격을 띄며 더욱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1부. 한국의 아픈 역사 기록,
일본제국주의를 떨게 하다

1부

한국인들의 주체적인 역사서술을 용납할 수 없었던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주의 사학은 한국사의 왜곡과 말살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식민주의 사학은 한국사의 특징으로 ‘정체성停滯性’과 ‘타율성他律性’을 내세우며, 일제의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고 식민통치를 합리화하였습니다. 이에 맞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러 독립운동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사를 서술하며 한국인의 정체성正體性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박은식

① 『한국통사』

『한국통사』는 1915년 박은식이 상하이에서 ‘태백광노太白狂奴’라는 필명으로 간행한 책입니다. 『한국통사』는 1863년 고종의 즉위에서부터 1911년까지를 다루며, 한국이 주권을 빼앗기게 된 50여 년의 역사를 다루었습니다. 이 책이 많은 한국인의 한국혼을 고취시키자 일본은 이 책의 국내 반입을 막기 위해 발매금지 조치를 취하고, 본격적으로 한국사를 왜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국혼이 살아있는 한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박은식의 정신은 국내외의 많은 동포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② 『안중근선생전』과 『이순신전』

『안중근선생전』과 『이순신전』은 박은식이 집필한 위인전입니다. 두 책은 안중근의 생애와 이순신의 생애를 정리한 것으로, 한국에도 훌륭하고 뛰어난 인물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박은식은 이 책들을 통해 단순히 영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단합을 부르짖었습니다.

“아! 오늘의 국가경쟁은
국민전체의 힘으로 하지 개인으로 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 승부는 국민의 단합 여하로 결정되며
그 국민의 동심애국同心愛國 일체합력一體合力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오로지 국민이 부지런히 학문을 터득하고
이순신을 추모하고 이순신을 본보기로 삼고
그의 정신을 기초로 삼아 사업에 분투하는 것 밖에 없다.”

신규식의 『한국혼』

『한국혼』은 신규식이 독립의식을 고취시킬 목적으로 1912년 동제사 설립 당시 연설했던 글을 모아 간행한 책입니다. 『한국혼』은 신규식이 1920년 상하이에서 창간한 잡지 『진단』의 「통언痛言」란에 연재되어 통언, 즉 분통한 외침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대한의 혼을 보배로 여겨 소멸치 않게 하라.”

이상룡의 『석주유고石洲遺稿

『석주유고』는 이상룡의 저술들을 모아 간행한 유고집으로, 그가 저술한 시문·제문·행장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석주유고』에 남아있는 여러 글들을 통해 이상룡이 만주로 망명해 구국운동을 전개할 당시의 기록과 그의 역사관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룡은 만주와 만주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이 땅이 남의 영토 아니요, 고구려의 유민이 발해 땅에 모여 사니, 이 사람들이 바로 우리 동포”라고 생각하였고, 그곳에 토대를 둔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습니다.

“차라리 머리가 떨어질지언정,
무릎을 꿇고서 종이 되지는 않으리.”

2부.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로 자주독립을 외치다

2부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립된 직후부터 외교활동에 집중하였고, 이를 위해 임시사료편찬회를 구성했습니다. 임시사료편찬회는 국제연맹에 일본의 왜곡된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한일관계사료집』을 편찬해 한국인의 자주독립을 부르짖었습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와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략』은 『한일관계사료집』과 함께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지닌 동시대의 저작들이었습니다. 한편 1930년대에도 일본의 영향을 받은 중국인의 역사 왜곡이 진행되자, 이시영은 『감시만어感時漫語』를 통해 이를 반박하면서 한중 양국 공동의 대일 항전을 주장하였습니다.

임시사료편찬회의 『한일관계사료집』

『한일관계사료집』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9월에 열린 국제연맹회의에 한국에 대한 일제의 왜곡된 선동을 바로잡고, 우리나라의 자주성과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간행한 사료집입니다. 고대부터 당시까지의 한일관계사를 수집해 정리하였으며, 4책 4부 739쪽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종래 한국에 관한 보도는 모두 일본인 측으로부터 나왔으니,
… 일본인의 과장적 선전이다.
간혹 공평한 서양인의 보도도 있다고 하지만,
비교적 공평하다고 하더라도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부정확하고
상세하지 못한 점이 있다. 이에 한국인의 입으로,
한국인의 사정을 세계에 호소하려 이 원고를 쓰노라.”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1920년 박은식이 임시사료편찬회의 『한일관계사료집』을 바탕으로 저술한 역사책입니다. 상·하 2권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상편은 일본의 침략과정과 조선총독부의 폭정을 다루었고, 하편은 3·1운동과 우리 민족의 항쟁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독립운동지혈사』와 『한일관계사료집』에는 모두 「독립운동 3·1운동 일람표」가 기재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한일관계사료집』을 참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맨손으로 분기하여 붉은 피로써 독립을 구함에
세계혁명사에 한 신기원을 열었다.”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략』

『한국독립운동사략』은 1921년 김병조가 일제침략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쓴 책입니다. 김병조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으로, 1919년 4월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사료편찬회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한일관계사료집』 간행에 이어 그가 집필한 『한국독립운동사략』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부터 1920년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3·1운동의 배경과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우리가 어제는 대한망국사를 읽었더니,
오늘에는 대한독립운동사를 읽는도다.”

이시영의 『감시만어』

이시영은 1934년, 중국의 교육학자인 황옌페이黃炎培가 저술한 『조선』의 내용을 반박하기 위해 역사평론서 『감시만어』를 썼습니다. ‘보고 느낀 것을 나오는대로 말한다’는 제목의 이 책은 조선총독부와 일본인이 연구한 자료에 근거해 황옌페이가 저술한 『조선』의 왜곡된 내용을 바로잡고, 우리나라의 독자성과 자주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한중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일제에 대항하기 위한 한국과 중국 간의 연대를 강조하였습니다.

“중국인들은 한국인과 더불어 대일전선에서
합작을 생각하고 그 성취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중국인들은 한국인을 관찰하되
절대로 관심을 게을리 해서도 안되며,
마땅히 친밀하게 제휴하는 마음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3부. 한국독립사, 돌아와 엮어내다

3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사료편찬회에서 활동하던 김승학은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의 사장으로 『독립신문』을 운영하였습니다. 만주의 독립운동 조직으로부터, 또 개인적인 후원을 받아 『독립신문』을 경영했던 그는 광복 이후 다시금 『독립신문』을 복간하였습니다. 또한 한국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한국독립운동사 저술에 앞장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쓰여진 김승학의 『한국독립사』는 자신의 독립운동 경험과 독립운동가 공적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쓴 독립운동 역사서입니다. 이 책은 박은식의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계보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한국독립사』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처럼 독립운동가의 자료수집 및 역사저술은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에필로그. 이어져온 역사, 이어나갈 역사

에필로그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 서술은 세 번의 변곡점을 거쳐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을 전후해 일본을 극복하고자 시작된 독립운동사 자료집 간행과 역사 서술이 첫 번째였고, 1980년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자극을 받아 독립기념관이 건립되는 가운데 본격적인 독립운동사 연구가 진행된 것이 두 번째 계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간의 자료집 편찬 및 역사 연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교양서가 출간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독립운동사 서술과 연구는 여러 과정을 거치며 이어져 왔고, 또 앞으로도 이어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