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이시영의
역사인식과 그 저술
특집
이시영의
역사인식과 그 저술
— 글. 정욱재(독립기념관 학예연구원)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1869~1953)은 대한제국기에 고위 관직을 역임한 명문가의 양반 출신이었으나, 1910년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자 모든 가족 및 형제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해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는 만주에서 경학사耕學社와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으로 1945년 해방될 때까지 활동했다. 이시영은 생전에 남긴 유일한 저서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1934년 중국에서 간행된 『감시만어感時漫語』이다. 부제를 ‘박황염배지한사관(황옌페이의 한국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반박한다)’으로 정한 것은, 중국인 황옌페이(1878~1965)가 1929년에 상하이에서 간행했던 『조선』의 내용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황옌페이는 근대 중국의 교육학자이자 정치가로 1919년 5·4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회를 주재했던 저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1927년 10월 조선을 방문해 약 10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조선총독부의 적극적인 협조 아래 주요 도시와 유적지를 둘러보고, 당시 일반인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규장각의 자료를 열람하는 등 『조선』의 저술을 위해서 많은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1928년 중국에 돌아와 집필에 몰두했고 1929년 『조선』을 간행했다. 이 책은 조선에 대한 지리·역사뿐만 아니라 당시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의 정치·사회·경제 및 조선인의 실태 등 거의 모든 분야를 기록한 책이다. 『조선』이 간행된 1920년대는 일본이 중국에 대한 침략 야욕을 숨기지 않았던 때였고, 중국 역시 일본을 크게 경계하던 시기였다. 당시 중국인들 사이에는 중국이 일본에 의해 제2의 조선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증폭되었다. 따라서 황옌페이는 일본의 침략이 중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시대적 위기감 속에 식민지 조선의 역사와 당대 현황을 『조선』을 통해 소개함으로써 일제에 대한 경각심과 타산지석의 교훈을 중국인에게 심어주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일본이 지배하는 조선의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데에 절반 이상의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조선』에 기록된 내용은 조선총독부가 제공한 왜곡된 자료와 일본인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상당 부분 의존했다. 그가 『조선』을 저술하기 위해서 참고한 자료는 총 130종인데, 그중 일본 자료가 85종으로 참고 자료의 약 65%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조선총독부가 제공한 각종 자료와 일본인 연구자의 연구를 신뢰해 식민사학자의 주장과 다름이 없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본다면, 이 책은 단군조선의 존재를 부정하고 대신 한족개화시대漢族開化時代를 설정해 한민족의 주체성을 무시하고 기자箕子로부터 조선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또한 고대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차지했다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인정하는 등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현실에 대해 왜곡된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더 심각한 상황은 이 책에 일본의 지배로 인해 당시 식민지 조선이 발전했다는 서술이 들어 있는 등 식민 지배를 간접적으로 정당화하는 논리까지 담고 있었다. 자연히 이 책을 읽은 중국인들에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농후했다.
『감시만어』
황옌페이
이시영은 황옌페이와 같은 유명 인사가 『조선』과 같은 왜곡된 저서를 간행하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제의 살해 위협을 겪고 있던 위험한 상황 속에서 이시영은 중국인의 역사적 왜곡에 맞서 과감하게 붓을 들었으며, 『감시만어』는 민족의 역사와 자존을 지키기 위한 실천적 의지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감시만어』가 저술된 1934년은 윤봉길 의거로 인해 임시정부가 일제의 탄압을 받아 임시정부 요인들이 중국 각지로 도피했을 때이며, 이시영 자신도 일제의 추적을 피해 몸을 숨겼던 시기였다. 그는 그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1933년 상하이의 한 서점에서 우연히 황옌페이의 『조선』이 있는 것을 보고 책을 빼어 내용을 검토한 후, 항저우杭州의 여관에 돌아와서 『감시만어』를 저술했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을 약 백여 권 정도 인쇄해 중국 각지의 유명한 서점에 배포했다.
『감시만어』는 중국에서 간행되었기 때문에 한문으로 기록되었다. 총 23장으로 이루어졌으며 분량은 70여 쪽이다. 황옌페이의 『조선』이 당시 식민지 조선에 관한 모든 분야를 다룬 종합지적인 책이라고 한다면, 『감시만어』는 엄밀한 체제를 갖춘 역사서는 아니다. 그러나 서명처럼 당시의 상황을 보고 느낀 것을感時 깊은사고 없이 감정에 따라 나오는 대로 어지럽게 말한漫語 것은 아니다. 『감시만어』는 이시영의 역사인식과 목적의식이 투영된 일종의 역사평론서라고 할 수 있다.
『감시만어』를 내용적으로 살펴볼 때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황옌페이가 왜곡 기술한 『조선』을 반박하고 한국사의 독자성과 유구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중국인이 가지고 있는 한국과 한국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하는 것이다. 이시영은 황옌페이가 일본 측 자료에 의존해 한국사를 기술함으로써, 한국역사의 유구성과 독자성을 폄하하고 한국인의 능력을 오해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통렬히 지적했다.
그는 황옌페이가 부정한 단군조선의 역사적 실존과 한국인이 역사상 이룩했던 업적 등을 거론하며 한국사가 중국사나 일본사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역사적 흐름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인의 능력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함을 밝힘으로써, 식민지 지배 하에서 좌절감에 빠져 있던 한국인들에게 자긍심을 불어넣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려 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을 넘어,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저력을 민족의 역사에서 찾으려는 강렬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둘째는 한국과 중국이 서로 연대해 일제에 공동 항전하자는 것이다. 이 내용이 『감시만어』의 약 절반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시영은 중국 지식인들이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고 이어서 중국 대륙 진출을 통해 침략 본성을 노골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하여 이시영은 중국과 한국이 공동 운명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나라를 잃은 한국이 바로 현재 중국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아울러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바치며 일본에게 부단히 항전하는 것을 배우라고 권했다. 그는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결국 한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대일전선을 구축하는 것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감시만어』는 단순한 역사 비평을 넘어 망국의 위기에 처한 중국인에게 경각심을 주고, 동시에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한·중의 연대 하에 공동의 연합전선 구축을 주장한 정치적 선언문이자, 그의 민족주의 역사관을 집약적으로 담아낸 역사의식의 산물이었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이시영과 김구(1946)
이시영은 김교헌金敎獻(1868~1923)으로 대표되는 대종교적 민족주의 역사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감시만어』에는 김교헌의 저서가 인용되고 있는데, 특히 한국고대사에 관한 내용은 거의 김교헌의 저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한국 역사의 유구성과 독자성을 강조하고 한국인의 능력을 신뢰했다. 그래서 지금 한국이 일제에 의해 일시적으로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 역사의 뿌리가 깊고 민족의 기상이 굳건하며 문화 창조 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반드시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당시 일제가 주장하던 식민사관, 즉 한국은 늘 외세의 간섭을 받아왔고 스스로 근대화를 이룰 능력이 없다는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그의 역사인식은 과거의 사실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당면한 현실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실용적인 성격을 띠었다. 그가 『감시만어』를 저술한 진정한 목적은 황옌페이의 『조선』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과 한국이 일본에게 핍박받는 공동 운명체임을 천명하고 함께 연대해 일본 제국주의를 물리치자는 데 있었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대일 전선을 구축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의 역사인식이 단순히 민족 내부의 자각에 머무르지 않고, 동아시아의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 독립의 활로를 찾으려는 현실적인 전략까지 포함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역사를 단순한 과거의 기록으로 보지 않고, 현재의 시대적 위기를 타개하고 미래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로 인식했다. 그는 나라를 잃은 한국이 바로 중국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역설하며, 중국인들에게 경각심을 주었다. 이는 한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함과 동시에, 국제적 공조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현실인식이자 역사인식이었다.
『신단실기』
©국가보훈부
김교헌
『감시만어』는 한국사의 왜곡을 바로잡고 민족의 자존감을 고취하며, 국제적인 대일 공동 전선을 촉구한 실천적인 역사서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이는 단순한 서술이나 학술적인 논쟁을 위한 글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의 생존과 독립을 위한 방책을 모색한 독립운동가의 깊은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다.
『감시만어』에 나타난 이시영의 역사인식은 한국 역사의 독자성과 유구성을 근거로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이 주체성을 바탕으로 중국과의 연대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는 현실적인 독립운동 전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그는 역사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그 정체성을 발판 삼아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것이다. 『감시만어』는 이시영이 독립운동가로서 품었던 역사인식이자, 망국을 경험한 지식인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남긴 시대적 경고였다. 그의 저서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민족의 주체성을 지키고 시대적 과제에 응전해야 할 사명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