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광복 80주년 기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2025년 상반기 특별전시,
〈한국광복군 그리고 국군〉
─ 글. 이현희(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학예연구사)
지난 3월 1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의 일곱 번째 특별전시 <한국광복군 그리고 국군>이 개막했습니다. 이번 특별전시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해, 한국광복군에서 대한민국 국군으로 이어지는 100여 명의 활동을 주제로 합니다. 대한제국 군대는 일본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었지만 의병을 거쳐 독립군과 한국광복군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국군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한국광복군의 주요 인물들은 국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국가란 무엇인지, 또 국가를 수호하는 군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떠올려 봅니다.
‘군주의 나라’였던 대한제국은 ‘국민의 나라’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나라를 지키던 군대와 군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해산된 대한제국 군인은 의병으로 활동하다 중국 만주와 러시아 극동으로 망명하여 독립군 주축으로 이어집니다. 이들은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고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했습니다. 이들은 1920년 독립전쟁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봉오동・청산리전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 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군무부 포고로 ‘독립전쟁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독립문을 가로질러 독립군이 서울로 입성하는 그림의 대한민력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벽에 붙어 있는 유물과 유물장을 통해 한국광복군과 국군에 참여한 여러 인물의 면모를 알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특히 초창기 한국광복군과 국군에 참여했던 주요 인물들로 구성되었습니다. 특히 유동열은 대한제국군에서부터 시작해 한국광복군으로 그리고 광복 후 미군정 시기의 국방부장관인 통위부장을 맡았습니다. 그 외에도 조성환・황학수・지청천 등도 주목할 만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과의 군사협력을 통해 대일 항전을 진행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1940년, 한국광복군 설립 이후 특히 학도병 출신으로 탈출해 자원입대한 광복군에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는 그 이전에 이미 많은 한국 청년들이 중국의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또 중국의 군사학교 안에 한국인 초급장교를 길러내기 위한 특별반도 설치되었음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왕중량’이라는 중국 이름으로 활동했던 나태섭 지사의 필업(졸업)증서와 임관장은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그 이듬해 보병 소위로 임관하였음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중앙육군군관학교의 졸업기념 단도와 배지, 메달도 같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축구부 사진에는 가슴에 군교, 즉 중앙육군군관학교의 약자를 딴 유니폼을 볼 수 있는데, 여기 아랫줄에 모자를 쓴 사람이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 선생의 아들 박시창 지사입니다. 한편 형제가 같이 중국 군관학교를 졸업한 이윤철・이윤장 지사 사진도 이채롭습니다. 형은 육군군관학교, 동생은 공군군관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당시 군관학교에서 가르치던 교재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개인장에서도 여러 유물을 볼 수 있는데 그중 나태섭 지사의 군번 도장이 있습니다. 군번 11634가 찍혀있는 도장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또한 박시창 부부사진이나 건국공로훈장 단장, 지금의 독립장을 수여받는 사진과 메달도 뚜렷이 남아 있고요. 안춘생 지사는 광복 후 사단장 등을 거쳐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하는데, 그 발령통지서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김동수 지사는 중국군과 한국광복군, 대한민국 국군으로 활동한 사진이 모두 남아 있는 드문 사례이기도 합니다. 김관오 지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위대장 증서와 충칭시에 거주했다는 외국인 등록증이 있고, 박기성 지사가 늠름하게 백마를 탄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나 한국청년전지공작대, 군사특파단 등을 조직해 한국광복군 설치를 준비하였고, 그 결과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가 성립되었습니다. 당시의 보고서와 성립전례식 감상문과 방명록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어 한국광복군과 관련된 여러 자료가 있습니다. 특히 한국광복군 배지와 안춘생 지사가 남긴 친필 원고, 『한국광복군소사』 등이 중요한 자료입니다. 또한 한국광복군 시절의 김영일 지사 사진은 당시의 복식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기도 합니다.
중국에 끌려간 학도병들과 중국에 있던 한국인들은 광복군이 있는 곳으로 탈출해 스스로 입대하였는데, 여기 최덕휴 지사의 그림과 여러 회고록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도 한청반(한국청년훈련반)과 한광반(한국광복군훈련반)에서 훈련받으며 대일전쟁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렇게 조국으로 가는 길을 준비했던 한국광복군은 인면전구공작대 파견과 OSS와의 합동작전인 독수리작전을 진행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과 독일에 차례로 선전포고를 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인면전구공작대와 독수리작전이 펼쳐졌습니다. 인면전구공작대는 인도·미얀마(버마)에서 영국군과 함께 활약한 한국광복군들이며, 독수리작전은 미국과의 연합훈련을 통해 한반도로 진입하려고 했던 국내 진입작전이었습니다. 이중에서 인상적인 유물은 독수리작전 당시 대위였던 윔스 씨를 25년이 지난 1969년, 독수리작전에 참여했던 한국광복군 동료들이 환영하며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당시 한국광복군들이 독수리작전을 통해 미국과의 항일전선에 앞장섰음을 기억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광복을 맞이한 한반도에서는 정식 정부 수립을 위한 여러 준비가 이루어집니다. 국방분야에서는 1946년 1월 남조선국방경비대(조선경비대)가 만들어졌습니다. 같은 해 6월에는 조선경비대를 지휘·감독할 통위부가 만들어졌고, 통위부장으로 한국광복군 참모총장이었던 유동열이 임명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여러 광복군 대원들은 조선경비대에 참여했고, 2년 후인 1948년 8월 국방부가 만들어지자 이들은 국방부의 주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통위부 시절의 육군사관학교 문서들과 조선경비대군가집, 그리고 통위부장이었던 유동열과 조선경비대 사령관 송호성이 보낸 초청장 등을 진열하고 있습니다. 또한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과 조선해안경비대 시절의 신분증과 장교 임명장도 있는데, 이를 통해 1948년 정부 수립 이전의 여러 활동을 알 수 있습니다. 1948년, 정부 수립에 따라 국방부가 만들어진 이후의 임명장도 주목됩니다. 국방부장관 이범석 명의로 수여된 임명장은 이제 우리의 국방을 우리가 맡아서 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음으로는 육군의 설립과 그 활동에 관한 전시가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진열하고 있는 보병제1연대와 육군제1기갑연대 깃발은 광복군 출신 인물들이 참여했던 부대의 깃발입니다. 그중 권준 장군의 경우, 수도사단, 지금의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의 초대 사단장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권 장군의 맹호부대 견장과 논문, 망원경과 지휘봉 그리고 보온기구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 앞에서 살펴봤던 안춘생 지사의 경우 8사단장 재직 당시의 노트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어 여러 지사의 명패와 지휘봉들도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육군대학과 육군사관학교 앨범, 종합학교 및 고급장교반 사진도 있습니다. 한국광복군 출신 국군들은 후배양성을 위해 각종 학교에서 광복군의 정신을 한국군에 계승시키고자 하였습니다.
한편 개인 유물 중에서는 장호강 장군이 받은 40개의 라이터가 이색적입니다. 장 장군은 시인이기도 하였는데, 여기에서 그 시 중 하나인 백마고지의 일부를 소개해두었습니다. 이와 함께 이무중 지사의 추도식 행사 관련 사진과 공적서도 눈길을 끕니다. 공적서에서는 이무중 지사에 대해 “광복 전에는 독립군으로 활동하고, 광복 후에는 국군에 투신해 향년 27살, 대령으로 장엄하게 전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부분이 우리가 이번 전시를 통해 알리고자 하는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해군과 공군을 살펴보면, 해군에서는 민영구 제독이 가장 대표적인 광복군 출신 인물입니다. 민영구 제독은 제8대 해군사관학교 교장을 맡기도 했는데, 이범석 장관이 쓴 해군사관학교 휘호가 있습니다. 또한 해군사관학교 확대편성 문서와 해군대학 졸업증서 등도 창군 당시 해군의 모습을 보여주는 주요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공군에서는 먼저 초창기 공군기인 제106기지단기와 함께 김정렬 공군참모총장이 집필한 국영문 3개년 계획안이 의미있는 자료입니다. 광복군 출신의 공군으로는 최용덕 장군이 대표적인데, 최 장군의 초상화와 명패 그리고 공군본부에서 집필한 최용덕 장군의 일대기도 흥미롭습니다. 또한 김신 장군이 찍거나 찍힌 공군의 여러 사진들도 초기 공군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다음으로는 공군사관학교와 관련된 유물들입니다. 교기와 졸업증서, 임관사령장이 있고, 이외에도 공사의 배지와 모표가 있습니다. 한편 이윤철 지사도 공군에서 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여기에서는 이 지사가 중국 공군에서 활동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진자료도 남아있는데 그중에서는 통신담당으로서 직접 설치했던 제주기지의 컨트롤 타워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역 후의 활동이 흥미로운 분들에 대해서도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김홍일 장군은 중국군과 한국광복군, 국군에서의 활약도 대단하지만 그 이후의 삶도 정치인으로서, 또한 외교관으로서 다양한 면모를 보이신 분입니다. 여기에서는 김 장군의 전역 후 대만 대사로서의 활약을 보여주는 연미복과 지팡이, 구두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후에 인권변호사가 되는 태윤기 지사가 조소앙 선생에게 보낸 편지, 또 군인이면서 전남 지사를 역임했던 김용관 장군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이 치하한 편지 등도 눈길을 끕니다. 한편 자료로서는 박종길 지사의 유물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박종길 지사는 전역 후 세 번에 걸쳐 민의원, 즉 국회의원에 당선된 분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당선증과 명함을 세트로 구성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광복군 화가로 이름 높은 최덕휴 지사의 그림도 있습니다. 또한 전역 후 서울시 부시장, 주일본공사를 지낸 전재덕 지사의 <전국 지방장관 회의 사진>도 특이하며, 마지막으로 두 번의 보건사회부 장관, 초대 노동청장을 지낸 정희섭 지사가 보사부장관 명의로 발행한 약사증명서로 3부의 구성을 마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군의 무기와 군복의 변천을 통해 전시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우리 군은 대한제국 시기부터 서구와 중국,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다양한 총기류를 사용하였습니다. 때로는 구입하였고, 때로는 전투에서 노획하였으며, 때로는 중국과 미국 같은 연합군으로부터 지원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군은 우리가 만든 무기로 무장해 철통같은 방어를 하고 있습니다. 군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제복 가운데 군복은 오랜 전통과 권위를 상징합니다. 개항 이후 근대 한국에서도 군복은 가장 신식의 의복인 동시에, 대한제국의 마지막 불꽃을 상징하기도 하였습니다. 군대 해산 후에도 독립군들은 군복을 맞춰 입고자 노력하였고, 그러한 노력 끝에 한국광복군은 정식의 군복을 갖춰 입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이 되어 육군과 해군, 공군은 각기 나름의 군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2025년 3월 현재, 한국광복군에 참여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 가운데 모두 579명이 서훈을 받았습니다. 그중 100여 명이 해방 후 국군에 참여해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전시를 통해 광복군에서 국군으로 이어지는 역사와 나라를 위해 헌신한 모든 국군 장병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