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독립의 의지, 군복에 담다: 한국광복군의 군복
— 글. 김정민(한성대학교 글로벌패션산업학부 강사)
한국광복군이 착용한 군복은 무장 독립 투쟁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자, 한국광복군임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한국광복군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중국 국민정부군 군복, 독자적으로 제정한 군복, 미군 군복 등 다양한 군복을 입었으며, 이를 여러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중에서 국민정부군 군복은 가장 오랜 기간 널리 사용되었고, 독자적으로 제정된 군복이 병행되었다. 이 두 가지 군복을 중심으로 한국광복군의 군복을 조망해 본다.
중국 국민정부군 군복을 착용한 대원들
창설 초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한국광복군은 중국 국민정부군의 군복을 착용했다. 한국광복군의 생활을 회상하는 여러 회고록에서는 ‘중국 군복’을 입었다는 언급이 자주 등장하며, 이는 여러 사진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大韓民國陸軍臨時軍制」를 통해 국군의 편성과 군복을 계획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광복군은 창설 당시부터 중국 군복을 착용했으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에서도 중국 군복을 입고 거행했다. 그들이 중국 군복을 착용한 이유는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국민정부와 긴밀한 외교적, 경제적 관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며, 이는 중국 내에서 독립 투쟁을 원활히 지속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한국광복군이 착용한 중국 군복은 국민정부의 「육군복제조례陸軍服制條例」 상복常服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 군복의 색상은 국민정부군이 오랜 기간 사용해 온 심회색深灰色이었는데, 이름만으로는 ‘짙은 회색’이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푸른빛을 띠는 회색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광복군 관련 여러 회고록에서 ‘청색’으로 언급되어 회색보다는 청색으로 인지될 만큼 푸른색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국 군복은 차양이 달린 원통형 군모, 제복 상·하의, 무장대武裝帶 또는 혁대, 각반과 군화 등을 포함한 복장이었다. 그중 원통형 군모는 한국광복군의 사진 속에서 중국 군복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특징적인 요소이다. 이는 중국과 군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독일 산악부대 군모를 도입한 것으로 보호대가 달려 있어 평소에는 차양을 위쪽으로 올려두고, 혹한의 날씨에는 내려서 얼굴을 감쌀 수 있는 기능적인 모자였다. 제복 상의는 중산복中山服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산복은 오늘날 중화민국에서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쑨원孫文, 1866~1925이 즐겨 입어 그의 호인 ‘중산中山’을 따서 명명된 재킷이다. 흔히 ‘인민복’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양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이 즐겨 입었다 하여 ‘마오 슈트Mao suit’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중산복은 주름이나 장식 없이 실용성이 강조되었으며, 네 개의 큰 주머니가 달려 있어 군복의 기능성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여기에 혁대 또는 장교의 상징인 무장대, 그리고 일자바지나 승마바지를 착용하고 각반 및 군화로 차림을 마무리하였다.
「육군제복도안」에 규정된 군모와 제복 상하의
(『독립운동사』 제4권)
「육군제복도안」에 규정된
(『不屈의 民族魂』)
중국 군복을 착용하던 한국광복군은 1945년 2월에 이르러 비로소 독자적인 군복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한국광복군은 1941년 11월부터 「한국광복군행동9개준승韓國光復軍行動9個準繩」에 따라 중국 군사위원회의 통제를 받았으나 1944년 8월에 9개준승이 취소되었다. 그 이후 군무부 군사과장 조지영趙志英, 1916~1950이 고안한 「육군제복도안」이 1945년 2월 19일에 국무위원회에 의해 공포, 시행된 것이다.
「육군제복도안」은 군모, 제복 상·하의, 외투, 혁대, 구두의 규격을 정했으며, 그 색상은 모두 황색 계열로 지정되었다. 이 색상은 그동안 착용해온 중국의 청색 군복과는 큰 차이를 보였으나 당시 중국 국민정부군 중앙군은 초황색草黃色 군복을, 일본군은 다갈색茶褐色 군복을 착용하고 있었기에 주변국들이 널리 사용한 군복 색상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군모는 정모正帽와 약모略帽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정모는 상부가 크고 차양이 달린 형태였으며 약모는 납작하게 접혀 휴대하기 편리한 형태로 그 도안은 영국군의 필드 서비스 캡field service cap과 유사하다. 제복 상의는 칼라와 여밈 형태, 네 개의 주머니가 부착된 점에서 중국 군복과 유사한 형태로 규정되었다. 또한 하의로는 긴 바지가, 그리고 더블 브레스티드double-breasted 형태의 외투와 앵클부츠 형태의 군화가 도안으로 지정되었다.
「육군휘장도안」에 규정된
(『독립운동사』 제4권)
「육군휘장도안」에 규정된
(『독립운동사』 제4권)
앞서 언급한 「육군제복도안」과 함께 한국광복군의 독자적인 표지장標識章 체계인 「육군휘장도안」도 제정되었다. 이 휘장도안은 1945년 2월 20일에 공포, 시행되었으며 모표, 병과 휘장, 견장, 수장 그리고 단추까지 규정하였다. 이 표지장에는 태극, 무궁화 꽃송이와 나뭇가지, 별이 주요 문양으로 사용되었는데 「육군휘장도안」에서는 무궁화와 태극은 우리나라를, 별은 자유와 평화를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이 문양들이 어우러져 우리나라가 자유롭고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 번영하기를 기원한 것이다.
무궁화는 오랜 역사에 걸쳐 우리나라의 상징이었으며, 태극은 1919년의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에서 군인의 모표 문양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육군휘장도안」이 제정되기 전부터 태극은 한국광복군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모표로도 사용되었다. 즉 한국광복군은 청색의 중국 군복을 입었을 때에도 국민정부군의 청천백일靑天白日 대신 태극 모표를 착용함으로써 그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한편 태극과 무궁화 그리고 별은 대한제국 시기 군복의 표지장에 사용된 주요 문양들이었다. 이 문양들을 한국광복군 표지장의 문양으로 지정한 것은 총사령부 성립전례식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장 조소앙趙素昻, 1887~1958이 ‘대한제국군이 해산된 날이 광복군 창군일’이라고 강조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즉 한국광복군은 대한제국의 군사 전통을 계승하며 그 정통성을 이어가고자 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광복군이 착용한 군복은 단순한 의복을 넘어 독립 투쟁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자 한국광복군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징표였다. 한국광복군은 다양한 군복을 착용하며 시대의 변화에 맞춰 조정해 나갔고 그 군복은 당시의 외교적, 정치적 현실을 반영한 상징이기도 했다. 한국광복군의 독자적인 군복과 표지장 체계는 그들의 정체성과 독립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었으며, 해방을 꿈꾸던 이들의 희망을 담고 있었다.
태극 모표가 부착된 오광심의 군모와 태극 모표
(『不屈의 民族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