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獨立運動의 眞相(十一)
六, 三月一日
日本은 前過를 悔改한 모양인지 總督 以下 大小官僚를 몃 個 更迭도 하며 免職도 식혓다. 그럼으로 임의 悔改하는 中에 잇는 過失을 더 追求하여 이에 重言復言함은 도로혀 君子에 갓갑지 못할 念慮가 잇다. 過去는 一切 過去로 장사하여 버리는 것이 智者의 할 일이오 仁者의 힘쓸 일이다. 그러니 悔改는 實行으로 表現치 아니하면 아니되나니 日人의 現在의 行爲를 보면 眞正으로 悔改한 者의 일이라 할 것은 하나도 업다 慘狀과 惡刑은 如前히 繼續된다. 余는 二週前 韓國에 잇슬 때에 監獄에셔 釋放되여 나온 이를 親히 目覩한 일이 잇는대 그의 身體에는 거의 完膚가 업섯다. 그럼으로 日人의 過失은 前過로 黙過하여 버릴 수가 萬無하다. 뿐 아니라 韓國의 現狀 韓人의 態度를 보더라도 지난 三四月頃보다 조곰도 나아진 것도 업스며 조곰도 變動된 것이 업다.
또한 우리는 今番 韓國獨立運動에 關하여 特히 注意할 點은 이것이다. 첫재는 韓國獨立運動은 決코 幾個 好事的 煽動家의 所爲가 아니라 全國民的 運動이라는 것과 둘재는 이 獨立運動의 背後에는 一大 偉大한 組織團結이 잇서 神策妙算으로 指揮監督을 하고 잇는 것이다. 決코 余는 韓人은 누구나 다 卽甚至於 僻村陬邑에 잇는 村農夫까지라도 獨立運動의 必要와 義味를 充分히 理解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韓人 全部에게 或은 全部는 못된다 하더라도 젹어도 其多大數에게 獨立에 對한 天性的 强烈한 要求가 잇는 것은 禁지 못할 事實이다. 그리하고 임의 總論에 말한 바와 갓치 民族은 個人과 갓치 흔이는 其天性에 말무여 支配되는 것이다. 또한 이에 一步를 讓하여 三月에는 비록 其運動이 國民的 運動이 아니엿다 하더라도 現今에는 이는 否認치 못할 明白한 事業이 된 것이다. 日人이 이러케 맨드럿다. 韓人은 只今은 覺醒하엿다. 隱忍强徒하여 오던 韓人은 只今은 顯拼敢拒하게 되엿다. 韓人은 日人의 所願대로 愛國者가 되엿다. 그러나 韓國의 愛國者가 되엿다. 이 點으로 보면 日本의 韓國에 對한 貢獻은 多大하다. 웬 까닭인지도 모르고 萬歲를 부르다가 監獄에 잡히여 갓던 村農夫나 쳘업는 學生들이라도 노혀 나오게 되면 後悔는 姑捨하고 도로혀 더 獨立運動에 熱心하게 된다. 余도 韓國에 잇슬 때에 被捉하엿던 男女를 보앗다. 져들은 監獄에서 그와 갓흔 惡刑과 苦楚를 當하엿지만은 조콤도 㤼懦하지 아니하고 하는 말이 만일 國家에 조곰이라도 도음이 되면 今日이라도 또 監獄에 들어가기를 辭讓치 아니한다 하엿다. 이는 決코 高言壯談이 아니다. 何故오 하면 져들은 余의게 이러케 말할 바로 그때에도 日人에게 發覺만 되면 젹어도 六個月徵役은 依例히 질 獨立新聞을 품속에 감추고 잇는 것을 보앗다. 그러나 이 이들은 決코 日人의 말하는 바와 갓치 所謂生來의 不良之輩도 아니오 또는 그럿타고 有識階級에 屬한 者들도 아니다. 다못 져들은 一個의 常民이오 商人이오 農夫다. 家庭을 治理하여 가는 안해오 어머니에 不過하다. 이로붓터 보건대 아마 日人들은 웨 韓人이 져갓치 騷動을 하게 되엿는지 그 原由도 斟酌치 못하는 모양이다.
또한 今番 韓人의 獨立運動에 놀날 만한 것은 져들의 周到機敏한 點이다 비록 제 아모리 敏活한 官憲이라도 또는 제 아모리 韓人의게 接近히 단니는 西人이라도 獨立黨의 機密은 모른다 勿論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斟酌은 한다. 그러나 그 以上은 모른다. 韓國獨立黨의 祕密은 그 當事者인 黨員中에도 主謀者나 實行者 以外에는 아모도 아는 이가 업다. 져들은 數千張의 宣言書를 印刷하며 數萬個의 國旗를 製造하여 分傳한다. 各種集會를 召集하며 그 會의 時日處所辯士까지라도 預定하여 發佈한다. 또는 國內뿐 아니라 멀니 海外에까지라도 通信을 한다. 余는 上海大陸報社에 잇슬 때에 三月一日 바로 獨立宣言이 잇는 그날 宣言書와 韓國의 現狀을 記錄한 陳述書를 밧은 일이 잇다. 또한 져들은 資金을 調達하며 新聞을 發刊한다 以前 大戰時에 「白耳義報」가 發行된 것과 갓치 韓國에셔는 「獨立新聞」이 每日發行되여 傳達된다. 또한 一大 國民的 團體는 徐徐히 그러나 着實히 그 事務를 進行한다. 아마 韓人이 이갓치 擧國一致하여 團結을 이루기는 今番이 矢가 되리라. 그리하고 이로 因하여 져들의 當하는 危險과 危害는 實로 想像 밧기다. 그러나 져들은 조곰도 躕躇치 아니하고 㤼내지 아니하고 各各 職分을 다하는 中이다.
韓人의 團結에 關하여 余는 임의 前章에 그 大略을 記述하엿거니와 이 國民的 團體는 現今에도 如前히 그 支配와 活動을 着着實行中이다. 韓國에는 祕密政府가 組織되여 聯通制를 實施한다. 져들은 法令을 頒布하며 傳達한다. 흔이는 少女와 婦人의게 말무여. 그러나 其實施方法은 全혀 祕密에 屬한다. 또는 上海 英國 美國 其他 各國과는 祕密히 通信을 交換하며 資金을 募集하며 外國에 送達한다. 임의 數百萬元의 金錢은 鴨綠江을 넘어 멀니 滿洲로 가며 中國으로 갓다. 또한 數千元의 黃白은 輸送中에 日人의게 押收를 當하엿다. 擧事에 男女는 出沒이 非常하며 연방 「獨立新聞」은 發刊된다. 이 新聞은 騰(謄)寫板으로 印刷되여 全國各處에 散布된다. 어대셔 또는 언제 오는지는 몰으나 冊床에 나라와 떠러지곤 한다. 또는 어대서 그 騰(謄)寫板을 求하엿는지 現今 그것이 어대 藏置되엿는지 또는 印刷는 어느 때 하는지 이는 全部 祕密이다.
또한 祕密政府의 背後에는 國民會라는 것이 잇다. 某氏의 說明을 듯건대 이 會의 目的은 國民의게 獨立의 能力을 修練하며 自主의 大義와 밋 國民의 責任義務를 敎導함에 잇다 한다. 勿論 이 會의 存在는 아모 祕密이 아니다. 그러나 그 會員이 누구인지 그 事業이 무엇인지는 아모도 아는 이가 업다. 會員들도 自己의 擔任한 職分 以外에는 모른다. 數百의 無辜는 嫌疑者로 逮捕를 當하는 中이다. 그러나 會는 如前히 繼續하야 간다. 現今 韓國에는 逮捕는 한 例事가 되엿다. 아모 理由도 업시 韓人은 一朝에 逮捕收監, 惡刑宣告를 當한다. 그러나 釋放되여 나오는 그날에는 누구나 다 獨立黨員이 되고야 만다.
그럼으로 新聞紙上에 아모 消息도 記載되지 아니한다고 이젼은 다 平穩하여졋거니 하여셔는 誤解다. 余가 韓國에 入하엿슬 때에도 平壤及其他 各處에 示威運動이 잇섯다. 또한 十月에도 지난 三月과 갓치 大大的 示威運動計劃이 잇섯스나 發覺이 되여 그만 停止가 되고 마럿다. 國恥紀念日에도 一般이 哀悼式을 하려 하엿스나 이 亦是 事情에 因하야 休止하엿다. 余가 바로 져곳에 잇슬 때에도 學校의 多部分은 同盟休校를 하야 學生들은 日語課를 全廢하거나 그럿치 안으면 純全히 外國語科로 敎授하라는 主張을 하는 것을 보앗다.
또 京城 엇던 小學校에서는 아츰 會集時間에 校規대로 一齊氣着整立을 하고 잇다가 訓辭을 하러 드러오는 日校長에게 日本校(敎)科書廢止請願을 한 일이 잇다. 이때 日校長은 긔가 막혀 그러나 從次로는 諸君의 所願대로 잘하여 줄 터이니 아직은 規律을 잘 順從하라고 曉諭를 하엿다. 그런즉 어린 學生들은 가만히 各各 校室로 도라가 日本敎科書란 敎科書는 全部 片片히 破棄하여 바리고는 校長의 압헤 도라와 하는 말이 日本敎科書를 廢止키 前에는 上學할 수 업소. 學校 잘하여 가시요. 우리는 감니다 하고 一齊氣着敬禮를 한 後 解散을 하엿다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只今은 거진 每日 이러나다시피 한다. 또한 去番에 停止된 示威運動도 그 實은 停止가 아니라 延期다. 그럼으로 이 受動的 抵抗運動은 아마 早晩間 또다시 繼續될지며 이는 더욱더옥(욱) 激烈性을 帶하게 되리라 그러나 이 戰略도 實은 다 日本人에게서 배운 것이니. 何故오 하면 만일 韓人이 武器로만 抵抗하엿더면 日人은 벌서 져들을 銃殺에 處한 지가 오래엿스리라. 그러나 어린아희들이 只敎科書나 찟고 또한 어룬들이라야 只萬歲나 부르는 데는 日本은 참으로 氣가 막히는 모양이다. 제 아모리 惡刑을 加하더라도 民心은 더욱더욱 鞏固하여 가며 獨立運動은 더욱더욱 激烈하여지는 데야 日本인들 이에 엇지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