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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 國語學者故李奎榮君追悼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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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 상해 국한문판

1920년 2월 17일 (제47호)

國語學者故李奎榮君追悼會
  • 소장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기사유형 일반 기사
  • 면수 2면
  • 단수 2단

國語學者故李奎榮君追悼會

君의 熱烈한 愛國心은 君으로 하여곰 國語擁護의 勇士가 되게 하다

去十四日 土曜 下午二時半에 上海民團內에 留滬同志의 主催로 國語學者 故李奎榮君의 追悼會를 開하니 會者 二十餘人이라 式場의 正面에는 「검돌스승을 울음」이라는 白絹幅을 걸고 式의 順序도 全部 國語로 쓰다

趙琬九氏 司會로 故人의 同門 金枓奉氏의 「섧글(哀悼文)」 申翼熙氏의 「악애(歷史)」 崔昌植氏의 「섧노래(哀悼歌)」 及 本社 李光洙氏의 「늣기말(感想談)」로 順序는 畢하고 故人의 門人 朴敏浩 嚴恒變 諸氏의 哀悼의 演說이 잇슨 後 一同이 撮影하고 閉會하엿스며 輓詞와 哀悼歌 哀悼文 等은 各各 故人의 遺族에게 送付한다고

金枓奉氏의 懇切한 哀悼文의 朗讀이 잇슨 後 申翼熙氏는 故人의 歷史를 말하야

「李奎榮君은 紀元四二四一年 庚寅에 京城蓮洞本第에 낫스며 七歲에 漢學을 受하야 才名을 博하엿고 性이 寡言謹嚴하야 同輩의 畏敬을 受하다 四二四一己酉에 普通中學校에 入學하고 同時에 周時經先生의 國語講習所에 入學하엿스며, 翌年 庚戍에 西北協成學校로 轉學하야 四二四三辛亥에 同校及國語講習所를 畢業하고 一年間 安東某學校에 敎師로 延聘되엿다가 翌年에 辭職上京하야 同年咸興夏期講習所에 國語를 敎授하고 翌癸丑秋에 崔南善氏의 經營인 朝鮮光文會에 入하야 말모이(國語辭典)의 編纂에 從事하고, 翌年 甲寅秋에 五星學校及國語講習所의 講師가 되엿다가 翌年 四二五一에 中央學校講師로 專任되야 今日에 至하다

民國元年 獨立運動開始 以來 君은 暗中에 同志의 連絡 其他의 謀議에 參與하엿슴은 勿論이라

이러한 人格의 人學者의 人으로 三十一의 壯齡에 今年 一月三日 流行性感冒로 永眠하다」

다음에 李光洙氏는 이러한 國家的 人物의 追悼會에 會衆이 이러케 零星함은 우리 國民이 앗길 만한 사람을 앗길 줄 모르는 까닭이라는 憤慨를 冒頭로 하야

「李奎榮君은 人格의 人이엿소, 그의 溫厚하고도 寡言謹嚴한 人格은 果然 同輩의 畏敬을 受하엿고 靑年의 模範이 될 만하엿소. 人格의 人은 民族의 寶物이오, 더욱이 우리와 갓히 人格의 人이 貴한 民族이 이만한 人格의 人을 失함은 큰 損失이오, 同時에 君은 有爲의 人物이오, 有爲라 함은 「한 가지를 할 줄 안다」는 뜻이오, 君은 國語學者이엇소. 우리와 갓히 有爲의 人物이 缺乏한 民族이 君을 失함은 더욱 哀悼할 만한 損失이오, 더구나 君은 國語學者이엇섯소, 法學이나 醫學은 學할 便宜도 만코 學한 後에는 金錢과 名譽도 오지마는 過去 十年間 우리 나라에서는 國語는 배흘 便宜도 적엇고 배흔 後에 밧을 것은 敵의 逼迫뿐이오. 글어하거늘 君은 이 國語學으로 十年(十年이라면 그의 一生이오)을 보내엇소, 이것은 오직 君의 熱烈한 愛國心에서 나온 것이오 -民族의 가장 重要한 連鎖요 特徵이 國語라 敵은 우리 國語를 破壞하기에 全力을 다하엿소, 그러고 어리석은 우리 同胞는 이것을 保存하랴고 戳力할 줄을 몰을 때에 君은 二千萬을 代表하야 勇士와 갓히 國語의 守護에 몸을 밧첫소, 이것이 熱烈한 愛國心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或은 그가 元年 三月붓허 獨立運動에 參加하엿다 하지마는 나는 그가 十年前 國語學에 獻身하던 날이 곳 獨立運動에 參加하던 날이라 하오」 하고 激切한 語調로 우리 民族이 君 갓흔 人物을 尊敬하고 記憶하여야 할 것을 論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