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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5월 14일 3면 '留滬同胞의 大演說會'
국민대표회의

1921년 5월 14일 3면 '留滬同胞의 大演說會'

立錐의 餘地가 업시 滿場한 聽客은 呂運亨 安昌浩 兩氏의 熱辯에 共鳴 本月十二日 下午七時半 留滬同胞의 演說會가 上海○○路○○堂內에 열니고 呂運亨 安昌浩 兩先生의 獨立運動進行策과 時局問題解決策에 對한 演說이 잇섯다. 오래동안 궁금하던 在留男女同胞는 遑遑히 모여드러 定刻前에 벌셔 場內는 滿員이 되고 廊下를 通하야 門外까지 넘쳐서서 立錐의 餘地가 업섯다 無慮四百名에 達한 聽衆은 演士의 演說의 一言一句라도 빠치지 안코 잘 듯어 너흐려고 하는 中에서 本日 演說會發起人中 金秉祚氏가 登席하야 開會를 宣하고 一同이 起하야 愛國歌를 唱하고 司會의 簡單한 開會辭가 잇슨 後 呂運亨氏가 登壇하엿다. 가이제루의 髥을 벗치고 淸秀한 眼瞳을 구을니며 流暢한 熱辯을 기우릴 때에는 聽衆은 痛快함을 마지아니하엿다. 呂運亨氏의 演說(別項記載)이 끗난 後에 今日은 平民으로의 前勞働局總辦 安昌浩氏 登壇하야 雄快沉重한 音聲으로써 우리 獨立運動의 進行策과 밋 時局問題解決策에 對하야 一場을 論罷하야 明斷을 下하니 朦朧에 짜히고 迷路에서 彷徨하야 左右할바를 確斷치 못하던 우리로서는 爽快함을 마지아니하여 각금 「올소=올소」 하는 熱狂的 呌號가 拍掌소래로 더부러 場內를 動하엿다 先生이 演說을 終함에 至하야 聽中을 向하야 지금 내가 論한바 時局難決에 對한 問題를 公論에 訴키 爲하야 國民代表會를 召集하자 함에 對하야 同意하는 이는 起立하라 하먜 一二人을 除한 外의 全部가 起立하야 贊意를 表하엿다. 同意하는 이는 姓名을 記하야 金秉祚氏에게 주기로 約하고 閉會하니 時는 同十時半이러라. (安昌浩氏의 演說은 次號에 揭載)

1921년 5월 14일 3면 '呂運亨氏의 演說'
국민대표회의

1921년 5월 14일 3면 '呂運亨氏의 演說'

우리 獨立運動의 過去 現在及將來 再昨 十二日夕 別項記載演說會 席上에서 述한 呂運亨氏의 演說이 左와 如하더라. 方向을 確定하고 軌道를 敷設하자 近日 우리의 時局問題에 對하야 各樣으로 解決方法을 云爲함니다. 果然 우리의 時局은 紛糾가 其極에 達하야 速히 解決을 하지 아니하면 못은 運動이 停滯될는지도 未知이외다. 나의 所見에는 이 問題의 解決을 論함에는 차라리 우리 運動의 方向을 確定하고 軌道을 敷設함이 도로혀 切直妥當하다 함니다. 換言하면 우리 運動의 進行方針을 決定하자 함이외다 진실로 이갓치만 되면 紛糾된 問題는 自然히 解決될 줄로 信함니다. 萬事가 다 그 原因의 如何에 依하야 結果을 收하지 아니함닛가 今日 우리의 運動이 敵의 壓迫으로 因하야 妨害를 受함보다 自體의 動搖가 一層尤甚하게 된 것도 또한 偶然의 事가 아니외다. 所以로 只今 우리들이 時局을 解決한다 하고 百方으로 苦心할지라도 原因잇는 結果를 果然 엇지하겟음닛가 設或 一時的의 彌縫을 得한다 하더라도 幾日을 不過하야 더 尤甚한 難局을 當할 것이외다. 이에 이 所謂原因을 溯考키 爲하야 우리 運動의 過去를 略說하고 將來의 方針을 定하기 爲하야 現今 先着할 事가 무엇이라는 것을 말하랴 함니다. 演題는 우리 獨立運動의 過去 現在及將來이외다. 建設에 急한 우리가 怨尤의 餘暇가 업다 우리의 運動은 宣言書에 記明됨과 갓치 半萬年歷史의 權威에 依하야 起하엿고 二千萬民衆의 誠忠을 合하야 起하엿고 人類良心의 發露에 基하고 世界改造의 機運에 應하야 起하엿소이다. 國民 全體는 地方과 階級과 敎派의 區別이 업시 合하야 同一한 소리를 呼號하엿소이다. 自家의 建設에 忽忙하야 敵의 罪惡을 怨尤할 暇隙도 업다 하엿소이다. 新運命을 開拓하는 今日에 感情을 論치 아니한다 하엿소이다. 그리하야 過去 數年間 그 至毒함 敵의 壓追(迫)下에서 巨大한 犧牲을 出하면서 世界를 움지긴 有史以來 初有의 大光輝를 發揮함에 至하엿소이다. 그러나 이는 十年來 敵의 鞭笞下에서 慘酷한 經驗을 가진 內地同胞들의 所業이외다. 反하야 海外를 願하면 數十年間 苦心慘澹한 여러 志士들의 事業은, 勿論 그들의 節介와 忠誠 卽祖國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은 누구나 感服 아니하는 바 아니지마는 國家를 亡하고 人의 奴隸로 된, 鄕關을 離하고 異域에 漂泊한, 抱負와 經綸을 가지고 時代에 不遇한 許多한 不平을 풀 곳이 업서 그러함인지 同志間에 無端히 爭鬨을 일으키여 內地同胞는 敵의 虐待를 밧는 十年 동안에 海外志士는 서로 內訌만을 繼續하여 나려왓소이다. 이리하야 海外의 十年事業은 實業이나 敎育은 勿論, 祖國의 光復을 꿈꾸면서 相當한 統一機關까지도 成立되지 못하엿고 個人間이나 團體間에 聲氣를 通할 만한 連絡도 업섯소이다 따라서 內地의 人心事情에 極히 漠昧하엿섯소이다. 國際道德에 訴코져 講和會에 가던 艱苦 그리하다가 歐洲大戰이 終了되고 平和會議가 開催된다 하니까 그제야 눈을 부비고 게을니 일어나니 무엇을 안다는 것이 平和會議에 나아가서 國際道德에 呼訴나 하여보랴고 俄領에서는 代表를 派送하되 大陸을 通過하야 八九朔後에 平和會義終了後에 비로소 到着되고 中領에서는 路資도 不足하야 겨우 一人이 獨行하고 美領에서는 늣게야 周旋하다가 旅行券도 不得하고 畢竟에 今日에 問題되는 委任統治의 事件을 演出하야 여러 가지로 急急한 가운데 不完全하고 不澈底한 事態가 層生하엿소이다. 臨時政府의 組織과 本國同胞의 愛國心 이리하다가 內地同胞가 萬歲運動을 일으킨 後에야 비로소 統一的 機關이 잇어야 되겟다 하고 臨時政府組織論이 發生하야 마츰내 여러 先輩들을 頭領으로 하고 엇더한 貌樣으로 政府가 組織되엇소이다. 三十三人도 國民이 選擧함은 아니이나 二千萬衆이 다갓치 願하는 獨立을 宣言함임으로 그들을 代表로, 또 領首로 推戴하고 信任하엿으며 또 바라고 願하든 우리의 政府의 組織됨은 넘어 깃버하야 엇더케 組織되엇던지 政府 그 法人을 神聖스럽게 榮光스럽게 생각하며 그 自然人들까지도 亦是 天使갓치 밋고 父兄갓치 사랑하야 恒常 某某先生이 疾病이나 업스신가 하고 빌고 바랄 뿐이오 조금도 是非와 長短을 論치 안코 다만 여러분이 一堂에 會合하야 和氣融融하게 凡事를 公議하야 速히 大業을 完成하기만 祈禱하고 죽으면서도 잡히면서도 金錢을 送하며 甚至於 婦女들은 首飾品까지를 빼여보냇소이다. 吹毫覓瑕의 計와 盜功嫁罪의 心事 그런데 또 이와 正反對로 海外에서는 機會와 口實만 엇으면 싸홈 板을 차리기로 始作하엿소이다. 獨立宣言에는 敵의 罪惡도 말할 겨를이 업다 하고 自家의 建設만을 責勵하자 하는테 外地의 우리들은 조곰아한 過失이라도 同志사이에 發見되면 電報로 文字로 內外地에 發表하며 엇더한 時 엇던한 人의게는 事實도 分明히 모르면서 創作과 推測으로 同志를 誣陷함니다 그리하야 누구는 委任統治請願者요 누구는 同贊成者요 누구는 敵의 벼슬한 者요 누구는 敵의 爵 밧은 者라 하며 政府와 議政院은 非法이다 少數의 所爲다 하야 否認이니 聲討니 하니 可憐한 同胞는 가슴만 치고 外人은 嘲笑하고 敵은 깃버하게 되엿소이다. 또한 功은 盜하고 罪는 嫁하랴는 者들은 以爲하되 이것은 俄領까닭이다 文昌範과 元世勳 等이 이러케 만들엇다, 朴容萬이가 北京에서 總司令이라 自稱하고 斗大의 銀印을 색여가지고 挾雜하여서 이러케 되엿다, 李東輝가 自初로 就任을 躊躇하다가 閣員의 威信을 墜落식 하고 그 뒤에도 들낙날낙하야 이러케 되엿다, 安昌浩가 自己의 野心을 부리여 입으로 統一을 부르면서 속으로 딴 짓을 한 까닭이다 第一 李承晩이가 委任統治를 請願한 까닭이다, 또 이러안 亂局을 當하고도 조곰도 解決할 誠意가 업고 自己의 主見만을 固執하야 이러케 되엿다 하야 여러 가지로 우리의 先輩들을 批評함니다. 그러나 冷靜한 頭腦로 公平히 觀察하면 다맛치 한가지오, 功이 잇어도 갓치 잇고 罪가 잇다 하더라도 갓치 잇소이다. 前非를 未改하면 何面目으로 渡江 그런데 功이 잇고 罪가 잇는 것은 如何하던지 獨立運動이 圓滿히 進行지 못하게 되는 그 責任은 누구가 짐닛가 우리 모든 一同이 가치 지는 것이오. 언뜻하면 內地同胞의 말을 만히 함니다. 內地同胞들이 臨時政府를 信任하느니 否認하느니 하나 다 헛소리요 內地同胞는 可否間 말 못하는 處地에 잇슴니다. 이는 全혀 外地에 잇는 人士間의 問題이외다, 決코 內地와는 關係 업는 것이외다. 다만 現今의 行爲를 곳치지 아니하면 未久에 內地同胞의 快刀의 割斷을 當하고 凄涼한 生涯로 一生을 海外에서 畢할 뿐이외다. 內地親戚故舊의 바라고 사랑하는 그 줄까지 끈어지오 設使他人의 힘으로 故土를 回復한다 하더라도 何面目으로 鴨綠豆滿을 渡하랴 함닛가 한番 痛切히 생각하여 볼 일이외다. 是非만 空論말고 辦法을 確定하자 歐戰이 終局■■보다 平和會가 開催될 時보다 더욱 크고 光明한 期會는 우리의 眼前에 臨迫되엿소이다. 이제도 互相間 空是非만을 論議하고 잇겟음잇가 果然 무슨 辦法으로 우리의 將來方針을 定하랴 함닛가. 或者는 云하기를 第一 쉬운 方法은 모다 政府안으로 들어와서 政府를 擁護하면 된다 함니다 그리고 또 絶呌함니다 그러나 이 말이 말은 조흔 말이나 只今까지 된 事實은 엇더함닛가 空想만으로 일이 되는 것은 아니오 반드시 實際에 合하여야 되겟음니다. 또 或者는 云하기를 問題는 政府의 自然人變更, 憲法改正, 官制改正 等에 不過한 것인즉 議政院으로 모혀서 곳치면 된다 함니다. 그러나 이것도 前論과 갓치 우리의 問題는 이처럼 單純치 못함니다. 只今까지 議政院과 對峙하야 온 機關도 잇지 안음닛가. 大統領의 雅量과 國民意思에 訴求 그런즉 내 생각에는 이러함니다. 우리의 過去의 運動은 對外하야는 不過國際道德에 呼訴한 것뿐이오. 對內하야는 部分的으로 系統업시, 條理업시, 策略업시, 다시 말하면 아모 頭緖업게 지내왓음니다. 이때는 비로소 眞正한 運動을 始作할 때이외다 그럼으로 時局이 搖亂하거나 從容한 것은 姑舍하고 一次各地에 散在한 同志를 會合하야 將來大計를 完全히 定하여야 하겟음니다. 現今 問題中에 在한 大統領게서 一切의 紛糾를 스스로 引咎하고 懇切한 文字를 發하야 海外同志의게 謝하고 一室로 會合하야 胸襟을 開하고 肝膽을 吐하야 過去의 一切를 忘하고 將來의 大事를 計할 것 갓으면 足히 時局만 收拾할 뿐 아니라 能히 大方針까지도 完定할 수도 잇을듯 함니다. 그러나 不幸히 大統領이 이한 雅量이 업슬진대 우리들끼리라도 速히 이 方法을 取하여야 하겟음니다. 代表會의 必要와 當局의 贊同期望 이제 우리끼리로서 此를 圓滿히 하 欄外에 랴할지대 各地方代表會를 召集하여 ■…■動만을 促進하기를 바랄뿐이오. 所■…■하면 相當한 辦法이 생길줄 밋음니다 政府■ 制度에 對하야는 變更할 必■…■ 將次衆議에 付하야 公決을 待하는 것이 相當하고 此外에 對內對外할 一切 ■…■ 同感■할줄로 밋슴니다 ■同感이라 할 것 갓으면 다 合力하야 速히 일을 成 ■…■ 時라도 停止할 수 업는 것이외다. 나 亦是 能力밋치는대로 贊助하야 들이겟음니다. 그리고 또 ■…■ 하면 거의 全數가 다 是是非非를 論하기를 願치 안코 同心合力하야 獨立運■…■하야 過去의 不統一로 事業이 만흔 故障이 잇엇음을 殷鑑삼고 切實히 討論 ■…■히 하여야 最適하겟다는 一人의 私見을 只今 이 자리에서 發表하는 것보다 ■…■ 에 依하면 在場諸君게서도 이 意見에 ■…■意를 感謝함니다. 우리의 運動은 暫■…■하도록이외다.

1921년 5월 21일 1면 '安昌浩氏의 演說'
국민대표회의

1921년 5월 21일 1면 '安昌浩氏의 演說'

獨立運動의 進行策과 時局問題의 解決方針 지난 十二日밤 演說會 席上에서 述한 安昌浩氏의 演說이 左와 如하더라. 政府에서 나온 理由 일의 有益을 爲할 뿐 여러분! 으날이 저녁 처음 나를 對할 때에 몬져 이러한 感想이 잇슬 줄 암니다. 「네가 엇지하여 政府에서 나왓는가? 네가 三年 동안이나 붓드러 오더 政府를 웨 오날에는 떠나서 밧그로 나왓는가? 그 안에서 누구와 衝突이 생겨 感情으로 나왓는가? 或은 그 안에서 辱과 괴로옴을 만히 當함으로 그것을 避하려고 나왓는가?」 내가 政府設立한 처음부터 오늘까지 三年 동안이나 이것을 붓들고 나오다가 오늘에 와서 이와 갓치 나오게 된 理由를 仔細히 說明하자면 그 말이 張皇하여 時間이 許諾지 안소. 그러니 簡單히 말하면 이럿소. 내가 本是 政府에 잇슨 것이 누구를 고와서 잇슨 것이 아니오, 지금의 나온 것도 뉘가 미워서 나온 것이 아니오 그런즉 나의 들고 남이 조곰도 感情上 問題가 아니외다. 또는 만일 내가 政府에 잇슬 때에 辱과 괴로옴이 잇다 하면 내가 밧그로 나온 後에도 그 辱과 괴로옴은 依然히 남아 잇슬 줄로 생각함니다. 그런즉 나의 나온 것은 辱이나 괴로음을 避하려고 나온 것도 아니외다. 그러면 웨 나왓는고? 나의 나온 本意는 오날에는 내가 勞働總辦으로서 일하는 것보다 平民으로서 일하는 것이 獨立運動에 좀 더 有益함이 될가 함이외다. 或은 내가 이번 國務員을 辭職한 것은 한때 便宜를 爲하야 假面的 態度를 가지고 多少 民心을 收拾한 後에 다시 드러가 李承晩 大統領 밋헤 永久히 總理가 되기로 約束하고 爲先 自己의 心腹인 孫貞道 等 某某氏를 드려보내엿다 함니다. 나는 實로 이러한 約束이나 意思가 업섯슴니다. 만은 來日이라도 내가 다시 勞働總辦으로 政府에 드러갈 必要한 境遇가 잇스면 맛당히 다시 드러갈 것임니다 웨? 나는 들고 나며 가고 잇는 것을 오직 우리 獨立運動에 有益되고 안됨을 標準할 것뿐인 때문에. 그런데 여러분은 이러한 셥셥한 생각이 잇스리다. 「우리가 獨立運動을 始作한 後에 選擇하여 政府 안에 모흔 某某 諸氏는 끗까지 變動함이 업시 둥그러케 안저서 일하기를 希望하엿섯는대 오늘에 웨 이갓치 더러는 나가며 더러는 잇게 되엿는가」 하리다. 엇지하야 이 갓치 된 原因과 뉘의 길고 져른 關係를 말하자면 긴 時間을 要求하겟는 故로 그 內幕을 여러분께 仔細히 알니지 못함이 한 遺感임니다. 다른 날에 이 內幕을 말할이가 잇슬넌지도 모르고 내라도 機會가 잇스면 말하고져 함니다. 그 內幕의 엇더한 것은 別問題이고 何如間 처음 모힌 이가 갓치 안지 못하게 된 것은 事實이오. 이것을 셥셥하게 생각함에는 나도 또한 同感者임니다. 「그러면 너는 끗까지 그 안에 잇슬 것이지 웨 너까지 나왓는가?」 나는 獨立運動 以後에 政府 안에 모혀진 所謂 頭領이란 人物들이 獨立을 完成하는 날까지 한 사람도 變動하지 말고 끗까지 갓치 나아가야 된다고 이를 絶叫하엿고 絶叫할 뿐 아니라 이것을 爲하야 努力하여 온 사람 中에 하나임을 自處함이다. 그러나 오늘은 나의 誠意와 能力의 不足인지 時勢와 境遇의 關係인지 何如間 나의 努力하던 그 希望은 임의 失敗를 告成하엿슴니다. 일이 이갓치 될 때에 나는 政府 안에 안저서 「내가 今後로는 엇더케 行動함이 맛당할고」 하야 생각을 만히 한 結果로 「이때는 不得已 政府 안에 잇슴보다 밧께 나와 平民의 身分으로 무엇을 하여야 되겟다」 하고 이 갓치 나왓슴니다. 오날부터는 여러분과 갓치한 百姓으로써 일하기를 始作하엿스니 나의 히는 일이 올커던 여러분은 만히 援助하여 주시기를 바람니다. 演說의 必要함과 밋 演說이 産出된 時期 이제 本論에 드러가기 前에 只今에도 演說을 하거니와 「演說이 무슨 必要로 生겨난 것인가 또는 어느 時代에 産出한 것인가」를 暫間말하겟슴니다. 演說이 神權時代나 君權時代에 産出하엿는가? 아니오 곳 君權時代末 民權時代初에 始作하야 民權時代에 盛行하여 왓슴니다. 이로 보아도 닐은바 共和政治, 民主政治의 必要로 産出된 것임을 알겟슴나다. 神權時代나 君權時代에 잇서서는 神의 意思 君의 意思나 少數人의 意思를 多數 人民이 服從할 것뿐이오, 民의 意思는 所用이 업스니 演說이 잇슬 必要가 업겟고, 共和時代에 至하여는 그 國家의 事業을 그 國民 全體 意思에 依하여 行하는바 國民이 各各 自己의 意思를 表示하야 어느 意思가 國民 多數 곳 全體의 意思임을 알려하니 不得不演說이 産出되엿소. 當初에 演說로써 共和를 促進하엿고 共和의 政治를 行함에 演說을 依하야 成하엿나니 決코 演說은 한때 演劇이나 노름처름 볼 物件이 아님니다. 오늘 내라도 大韓國家의 일을 내 單獨으로 行할 權勢와 能力을 가젓다 하면 여러분 압헤 나와서 演說할 必要가 업슬 것임니다. 나의 오늘 演說함도 내의 意思를 一般에게 提供하야 國民 多數가 取하고 取치 아니함으로 前途問題를 解決코져 함이니 여러분은 나의 演說하는 것부터 注意하시기를 바람니다. 우리의 獨立運動은 繼續할가 停止할가 이제 몬져 무러볼 말은 「今番에 始作한 우리의 獨立運動은 繼續하랴는가 停止하랴는가」 함이외다. 누구나 말하기를 「無論 繼續할 것이지 停止한다 만다고 議論할 餘地가 잇슬가」 하겟소, 만은 그 입으로는 이와 갓치 말하되 其中心의 眞情을 보면 疑心이 가득하야 「繼續할가-停止할가」 하는 躊躇가 업지 안소. 몬져 獨立運動을 繼續하고 아니함에 確斷이 업스면 獨立運動의 進行策을 말할 必要도 업슴니다. 여러분! 몬져 이에 對하야 明確한 斷定을 지으시오. 만일 누가 나다려 뭇기를 「너는 엇더케 定하엿는냐」 하면 나의 明確한 對答은 「獨立運動은 絶對로 繼續할 것이라 하겟소. 오날에 大韓사람은 死하나 生하나 成하나 敗하나 獨立運動을 끗까지 繼續하기로 決心할 것이오. 이것이 大韓사람 된 者의 天職이오 義務이외다 누구던지 獨立運動을 繼續할가 말가 躊躇하는 이도 獨立이슬커나 自由가 슬혀서 그것을 밧을가 말가 躊躇함은 아님니다. 다만 獨立運動이 成功이 될는지 말는지 하는 疑心과 傷心으로 그리 되는 줄 아오. 안인 것이 아니라 얼른 보면 우리에게는 人材도 缺乏하고 財力도 缺乏하고 其他 무엇도 不足하고 무엇도 업슴으로 獨立을 成功할가 못할가 하는 疑心이 생길 듯도 함니다. 만은 여러분은 조곰도 疑心하거나 傷心하지 마시오 우리는 獨立할 可能性이 確實히 잇슴니다. 웨? 우리 大韓사람은 무엇으로 보던지 根本的 資格이 獨立할 民族이오 決도 異民族의 奴隸의 生活을 오래짓지 아니할 民族임니다. 이러한 우리의 民族으로서 獨立을 要求하는 이 날에 世界의 時運은 우리의 要求를 應함니다. 보시오 俄羅斯와 美國이 將次 日本을 치려-, 英國과 佛蘭西도 日本을 害하려-, 오스트렐랴와 加奈陀도 또한 日本을 排斥하려 하는 것이다 事實임니다. 그런즉 오늘 世界의 現象이 모도다 日本을 둘너치는 때니 이것이 前에 업던 우리의 큰 機會가 아님니가? 그런즉 우리 民族根本的 自體로 보던지 外圍의 形勢로 보던지 우리의 獨立을 完成할 可能性이 잇거늘 엇지하야 疑心하고 躊躇하는가. 우리 中에서 獨立運動繼續에 對하야 疑心하고 躊躇한다 하면 그 가장 큰 原因은 이것임니다. 實質的으로 獨立運動을 進行하기 爲하야 우리 自體의 境遇와 處地를 삷허서 그 境遇와 處地에 合當한 方針과 計劃을 세우고 그것을 밟아 나가기로 努力하지는 아니하고 空然히 턱 업시 僥倖과 偶然을 標準하고 過度한 欲望을 품고 기다리다가 그 턱 업는 欲望대로 되지 안는다고 疑心이니, 傷心이니, 悲觀이니하는 것이 생김니다. 只今에 흔이 들니는 말이 被引導는 引導者에게 對하야 不足한 것을 恨하고 引導者는 被引導者에 對하야 不足한 것을 恨하야 「이런 引導者를 가지고 무엇을 할고 이런 同胞를 가지고 무엇을 할고」 하는 소래가 만슴니다. 그 밧게도 「무엇이 不足하니, 무엇이 不足하니」 하는 소래가 따라서 만슴니다. 여러분 생각하여 봅시다-우리의 引導者나 被引導者가 不足하다고 假定하고 不足한 引導者를 작고 辱한다고 그 引導者가 一朝에 變하여 足하여질가? 被引導者를 못낫다고 남으린다고 一夕에 變하야 잘난 百姓들이 될가? 또는 무엇무엇이 不足하다고 팔장찌르고 도라서서 怨聲과 恨聲를 지른다고 그 不足한 것들이 다 變하야 足하여질가? 그럴 理가 萬無함니다. 그런즉 오날 우리의 크게 覺悟할 바는 우리는 이러한 引導者被引導者를 가젓고 이러한 不足한 境遇에 處함을 밝히 보고 이 境遇와 處地에서 우리는 엇더케-엇더케 進行하여야 오늘의 不足한 것을 來日은 足하게 하야 期於히 獨立을 完成하기로 나아갈 것이 아님닛가? 이러한데 所謂 落心한다 傷心한다 하는 그네들은 아모 料量도 업고 自己의 努力할 義務도 나하지 아니하고 「李承晩이 獨立을 실어다 줄가-李東輝가 獨立을 차자다 줄가-또 其他 某也가 가져다 줄가!」 하다가 그것이 뵈이지 안는다고, 또는 「美日戰爭이나 갑작이 생겨서 가만히 안젓다가 獨立을 엇을가」 하다가 그도 速히 되지 안는다고 所謂 落心이라 怨罔이라 하는 것이 생김니다. 여보시오-여러분! 우리 國民이 이러하고야 무엇을 希望하겟소. 오늘에 크게 覺悟하야 時間의 遠近을 꺼리지 말고 우리는 우리 處地에서 우리 行할 方針을 세워가지고 勇往直進합다더. ▷第二面에◁ 過去의 獨立運動은 엇더한 獨立運動? 그런데 今後의 獨立運動은 엇더케 進行할가 함을 大綱 생각합시다. 이것을 말하기 前에 「우리 過去의 獨立運動을 엇더케 하엿는가」를 말하리다. 過去의 運動은 獨立을 宣言하고 萬歲를 부름이 잇소. 獄에 갓치고 鎗劍에 찔니우고 生命을 犧牲하며 한 모든 것이 萬歲運動을 行함이엇소. 그 後에는 鴨綠江沿岸으로 始作하야 炸彈短銃等의 示威運動이 잇섯고 豆滿江沿岸에서 多少의 戰鬪的 運動이 잇섯고 歐洲와 美洲에 宣傳運動이 잇섯소 이 過去 運動의 其結果가 무엇인가 하면 그 萬歲 소래로 敵이 쫏겨가기를 바람도 아니오 多少의 炸彈과 局部的 戰鬪로 敵을 能히 驅逐하리라 함도 아니오 그 結果가 우리 國民의 獨立의 志願과 自由의 精神을 밧게 發表하야 첫재는 우리 國民이 서로 「우리 國民 全體가 同一하게 獨立할 意志가 잇다」 함을 알녀지고 또한 「크게 獨立運動할 約束을 일우게 된 것」이오, 둘재는 世界列邦으로 하여곰 「우리 民族의 意思와 勇氣의 엇더함」을 알게 함이오. 過去의 獨立運動이 果然 크다고 할 만하외다. 그러나 未來獨立運動에 比하여는 그리 크다고 할 수 업슴니다 우리 民族이 일즉 國家的 큰 運動을 지나 봄이 別로 업섯슴으로 過去의 運動을 非常한 큰 일로 생각하겟스니 實狀은 未來의 큰 運動을 始作한 것뿐이오 獨立運動할 意思를 對內對外에 宣傳한 것뿐임니다. 그러타고 過去 運動을 無價値하고 적은 일이라고 말함은 아님니다. 過去에 그와 갓치 始作하여 이 압헤 進行할 獨立運動이 長遠하고 廣大한 것을 切實히 생각하기 爲하여 말함이외다. 今後의 獨立運動은 엇더한 獨立運動? 그러면 將來의 獨立運動은 무엇인고? 우리가 「獨立運動」 「獨立運動」 하고 糢糊한 가온대서 지내서는 안되겟고 몬져 무엇이 獨立運動인지를 밝히 알어야 하겟소. 獨立運動은 獨立을 일우기 爲하야 動作하는 모든 일을 가르침이라 하겟소. 만은 「모든 動作中의 그 要領이 무엇인고」이란 이것이 여러분의 意思와 내 意思가 서로 符合하는지 알고져 함니다. 우리 獨立運動의 要領을 말하면 아래의 여슷 가지 큰 것임니다. 一은 軍事運動 二는 外交運動 三은 財政運動 四는 文化運動 五는 殖産運動 六은 統一運動 獨立運動이란 것은 이 여슷 가지 運動를 綜合한 名詞임니다. 그런고로 이 여슷 가지의 運動을 다 바로 進行하면 獨立을 成功하겟고 이 여섯 가지 中에 하나라도 闕하면 다른 다섯 가지가 다 進行이 되지 못하야 獨立을 成功하기 不能하겟슴니다. 그럼으로 누구던지 이 中에 「무엇 한 가지만, 或은 두 가지만 하여야 된다」 하는 이는 나는 밋을 수 업소. 이 여섯 가지 中에 어느 것이 輕하고 重한 것이 업시 다 똑갓치 힘쓰야만 될 것임니다. 그런즉 우리는 空然히 勢力이니, 權利니, 野心이니 하고 虛空中에서 기름자를 가지고 뷔인 싸홈을 짓지 말고 各各 나의 資格과 境遇를 따라서 軍事運動이나 外交運動이나 其他 어느 運動이나 이 여섯 가지가 온대 무엇이던지 하나식 自己에게 適當한 것을 分擔하고 그 일이 일우워지도록 最終까지 꼰준이 나아가기를 決心함시다. 六大運動의 必要와 밋 그의 輕重同一視 첫재 軍事運動이 엇지하야 必要한고 함에 對하야는 勿論 아모도 疑心할 이가 업슬 줄 아오. 웨? 「獨立을 成功하려닛가 獨立戰爭을 하여야 되겟고 獨立戰爭을 하려닛가 軍事運動을 不可不하여야 되겟다」고 누구던지 얼는 對答할 줄 암니다. 둘재 外交運動에 對하여도 異論이 업고 「우리가 强한 日本으로 더부러 싸화 익이랴면 列國의 同情을 엇어야 되겟고 列國의 同情을 엇으랴니 不可不外交運動을 하여야 되겟다」고 論調가 一致할 것이오. 또는 셋재 財政運動으로 말하면 「以上의 말한 軍事運動이나 外交運動과 其他 모든 運動을 하랴면 다 金錢이 잇서야 될 터이니 財政運動은 아니할 수 업는 것이라」고 다 말할 줄 암니다. 그러나 넷재 文化運動은 「무슨 必要가 잇는가 오늘날 잇때 어느 何暇에 文化運動과 갓흔 것을 하고 遷延歲月하겟는가 어서 하로밧비 나가 싸화 죽어야지」 하고 敎育을 밧는 者나 敎育을 베푸는 者에게 非難하는 일도 업지 안슴니다. 하믈며 다섯재 殖産運動에 니르러서는 「웨 獨立運動을 아니하고 이 따위 일을 行하느냐」 하야 이 殖産運動이 獨立運動의 一部分되는 價値까지도 否認하는 이가 잇슬 줄 암니다. 만은 내 이제 그러치 안은 理由를 簡短히 말하이다. 이 世上 모든 일에 成하고 敗하는 것이 그 知識이 길고 졀음에 잇슴을 깁히 깨다르야 하오. 「우리 나라가 웨 倭賊에게 亡하엿느냐」 하면 다른 연고 안이라 우리의 知識이 져들보다 短한 까닭이오. 그럼으로 오늘 우리 大韓의 사람들은 知識의 一寸一尺을 늘이는 것이 곳 우리의 獨立을 一寸一尺을 더 갓갑게 함인 줄을 깁히 깨다를 것이오. 이 文化運動이야말로 根本的 問題임니다. 지금 우리의 걱졍하는 바 統一이 잘못 된다, 紛糾가 생긴다 하는 이것도 또한 우리의 知識程度가 幼稚함에 原因한 것이오. 그런고로 眞正한 獨立에 뚯이 잇는 우리 民族의 知識을 늘이기 爲하야 眞正한 努力이 잇슬 것임니다. 殖産運動으로 말하면 여러분 「過去 歐洲戰爭 때에 이 殖産運動을 各國이 平時보다 엇더케 힘썻는지」를 아시겟지오? 내가 美洲에서 直接目覩하엿거니와 이때 美國사람들은 엇던 階級을 莫論하고 이 運動에 全力을 다 합데다. 女子는 纖纖玉手에 허메를 들고, 富豪는 其華麗한 公園을 닐너서 菜田을 만듭데다. 其他 져들은 온갓 方法은 갓 手段을 다하여 殖産을 經營하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앗소. 殖産運動이 잘 되여야 따라서 財政運動이 잘될 것은 贅論할 必要가 업슬 것이오. 나는 우리 獨立運動者中에 消耗者뿐이고 生産者가 一人도 업슴을 볼 때에 나의 가슴이 답답합데다. 西北間島를 보라, 俄領을 보라, 北京을 보라 이 上海를 보라, 所謂 獨立運動을 한다는 사람치고 生産하는 者가 그 누구인가? 오직 消耗者뿐임니다. 이것이 우리 獨立運動將來에 큰 險惡한 問題라고 함니다. 만일 져들이 다 各各 生産者가 되여 뎌들의 現今의 消耗하는 그 金錢의 全部가 臨時政府의 金庫로 드러오게 되면 우리의 獨立事業이 얼마나 잘 振興될넌지 모르겟슴니다 그럼으로 多數는 이것을 尋常視하지만은 其實은 殖産運動이 우리 獨立運動에 큰 關係가 잇슴니다. 勿論 나의 말하는 本旨가 다른 運動은 다 輕하고의 文化運動과 殖産運動이 가장 더 重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 亦是 여섯 가지 必要한 中에 또한 必要한 것임을 말함이외다. 六大運動의 具體的 進行方針과 밋 實行 以上에 말한 여섯 가지 運動에 各各 其進行의 方式을 말하자면 첫재 「軍事運動」에 對하야 엇더한 方針을 取할고? 過去에는 「다만 멧 十名 멧 百名式이라도 나가서 싸화야 된다」 말하고 말 뿐 아니라 그러한 事實도 잇섯소. 만은 今後의 軍事運動은 그와 갓치 하여서는 안되겟소. 旣往에 멧 名식 少數로 나가서 싸호자 하는 이에게 그 무슨 意思인가 무르면 或은 「이러게 함으로 世界에 宣傳資料를 만든다」 하며 或은 「이갓치 함으로 敵을 敗케 하겟다 함이 아니오 다만 붉은 피를 흘녀 우리 民族에게 獨立精神을 깃쳐주자 함이로라」 함니다. 내가 그 熱烈한 뚯에 對하여는 嘆服하거니와 그네의 意思를 보면 하나는 外界의 救助를 依賴할 뿐이오 둘재는 獨立을 成功할 信念이 업는데서 나왓다 하겟슴니다. 今後의 우리는 軍事運動을 하되 그러한 意味로 할 것이 아니오 敵을 驅逐하야 降服 밧기를 標準하고 運動할 것임니다. 일즉 우리의 흘닌 피만 하여도 宣傳資料나 後孫에게 끼쳐줄 獨立精神은 넉넉하오. 今後의 흘니는 피는 敵을 打破하고 우리의 獨立을 完成하기 爲하야 흘닐 것임니다. 그러면 첫재는 軍事를 募集할 것이니 몬져 志願兵 三萬名 以上 五萬名 以下만 募集하야 잘 團結하더라도 이것을 基本하야 幾十幾百萬의 獨立軍을 募集할 수 잇슬 것임니다. 이와 갓치 志願兵을 募集함도 一朝一夕에 물먹듯 쉽게 될 것이 아니고 多大한 努力를 虛費하야 이달에 멧 百名 來달에 멧 千名식 募集하야 나아가면 其預定數■에 達할 것임니다. 또는 우리 軍事運動에는 士官養成에 힘쓰되 다른 나라에 比하야 一層 더 全力할 必要가 잇슴니다. 다른 나라 軍士로 말하면 다 訓練를 充分히 밧은 軍士임으로 士官이 적어도 可하거니와 우리의 軍士는 訓練을 밧지 못한 軍士임으로 訓練 업는 軍士에게는 指導統率할 士官이 더 만허야만 되겟슴니다. 내가 오늘 저녁 이 여섯 가지 運動에 對하야 그 進行策의 大綱이라도 말하려 하엿더니 나의 말할 氣力도 不足하거니와 이 場所에서 十時 안으로 떠나야 되겟는고로 그것을 다 말하지 못하고 略할 수밧게 업스니 먜우 遺感됨니다. 다만 내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바는 軍事가 안된다, 外交가 안된다, 財政이 안된다, 其他 文化와 殖産과 統一이 안된다 하야 獨立運動에 落望하지 마시오. 軍事나 外交나 財政이나 文化나 殖産이나 統一이다 圓滿히 되엿다 하면 獨立運動을 한다고 할 必要가 업지 안슴닛가? 업는 軍士를 잇게 하도록, 업는 財政을 잇게 하도록, 其他 모든 업는 것을 잇계하고 不足한 것을 足하게 하는 것이 獨立運動이 아님닛가. 그런즉 우리는 이 六大運動을 目標로 삼고 進行할 方針을 硏究하야 相當한 計劃을 세우고 나아가고 나아갈 뿐임니다. 諸般運動의 成敗는 統一의 成否에 維在 이제 다른 것은 다 略하엿거니와 「統一運動」에 對하여 말하겟스. 以上에 말한바 軍事運動이니 外交運動이니 하며 其他 모든 運動에 成하고 敗함이 統一運動의 成하고 敗함에 달녓소. 내가 統一을 한다 만히 부르지즌 故로 「安昌浩의 統一獨立」이란 別名까지 잇지만은 獨立을 完成하랴면 우리 民族的 統一力이 아니고는 될 수가 업스니 獨立을 期望하는 우리는 統一의 完成을 爲하야 努力아니 할 수 업슴니다. 내가 이제 그 理由를 말하면 오늘날 우리의 軍事運動도, 外交運動도 웨 잘 아니되는가 하면 軍事運動을 하되 不統一的 軍事運動이고 外交運動을 하되 不統一的 外交運動인 때문이외다. 其他 모든 運動의 成就가 못됨이다 그 까닭임니다. 北京에서도 軍事運動, 西間島에서도 軍事運動, 北間島에서도 軍事運動, 俄領에서도 軍事運動, 또 어대서도 軍事運動을 하야 그네들이 그 軍事運動에 多大한 時間과 勞力을 犧牲하엿스되 各其 局部的 分裂한 少數의 軍事運動임으로 그 成績이 뎌갓치 零星하야 오늘까지 大韓民族的 軍事運動이 實現되지 못한 것이오. ▷第三面에◁ 外交運動도 財政運動도 亦是 그러함니다. 外交로 말하여도 北京에서도 따로히, 俄領에서도 따로히, 美洲에서도 따로히, 또 어대서도 따로히 甲과 乙이 各各 내가 大韓民族代表라 하고 外國人를 交涉하니 누가 其眞的한 大韓民族의 代表者라고 認定하리오. 이럼으로 오늘까지 大韓民族的 外交運動이 實現되지 못하야 外交할 만한 날에 外交의 成效를 거두지 못함니다. 財政으로 말하여도 내가 일즉 「國民皆納主義」를 徹底히 實行하자 말하엿거니와 李哥나 金哥가 各各 分裂的으로 財政을 運動치 말고 全國民이 모다 統一的으로 大韓臨時政府의 國庫를 向하야 財政을 밧쳐왓더면 우리의 獨立事業이 얼마나 發展되엇슬넌지 몰낫겟소. 그런데 이것도 또한 統一의 軌道를 일흠으로 財政運動의 實現이 오늘까지 못되엿슴니다. 이것뿐일가 앗가도 말하엿거니와 모든 運動의 實現못됨이다 이 統一의 軌道를 일흔 때문이외다. 統一의 第一方法은 中央機關에 總集中 그런즉 統一은 不可不하여야만 되겟는대 其統一은 엇더한 方法으로 할고? 統一하는 方法中에 가장 큰 것이 두 가지니 一은 「全民族的 統一機關을 設置하고 그 設置한 中央最高機關에 全國民의 精神과 마음과 힘을 集中하야 中央의 勢力을 擴大케 할 것」이요. 二는 「社會의 公論을 세우고 큰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勿論 엇더한 사람이던지 다 그 公論에 服從케 할 것」이오. 只今 엇더한 이들은 「大韓臨時政府와 議政院을 否認하노라」고 發表까지 하엿스니 그 勇氣가 過하고 大韓사람으로서 참아 못할 일을 하엿다고 함니다. 우리 臨時政府와 議政院이 임의 成立된지가 三年의 時間을 지내엿고 對內로 말하더라도 鴨綠江, 豆滿江으로서부터 뎌 釜山港, 海州島까지 가면셔 韓國사람다려 뭇기를 「녀의 政府와 議政院이 잇나냐」 하면 「예-우리 政府와 議政院이 上海에 잇슴니다」고 대답함니다. 또는 中領이나 俄領이나 美領을 勿論하고 海外에 잇는 一般僑民이다 「우리의 議政院과 政府는 上海에 잇다고 함니다. 그런즉 現存한 우리의 議政院과 政府를 海內海外의 全體 國民이 認定하는 것은 事實임니다. 또는 列國으로 말하여도 法國이나 英國, 美國이나 俄國, 中國이나 其他 어느 나라를 勿論하고 아직 우리의 政府와 議政院을 正式으로 承認은 하지 아니하엿스나 現存한 우리의 議政院과 臨時政府의 存在를 認定함니다 우리가 이러한 境遇를 엇지 못하엿다 하면 멧 千萬元의 金錢과 多數의 生命을 犧牲하여서라도 이러한 境遇를 지으랴 하겟거늘 임의 三年이나 지나고 對內對外間에 다 認定되는 우리의 議政院과 政府를 否認한다 함은 넘우도 失數한 잍이라고 함니다. 바로 不充實한 것을 充實하도록, 不圓滿한 것을 圓滿하도록 改善한다 함은 맛당하거니와 엇지 否認한다고야 하리오 그런즉 已爲成立된 우리의 議政院과 政府는 더욱 充實하게 하고 더욱 鞏固케 하야 民族的 統一機關이 되게 할 것이오. 만일 全部 國民의 힘을 中央으로 集中하는 道를 實行치 안코 各各 제가 英雄이라고 分派的 行動을 取하면 百年을 가더라도 統一을 일을 수 업슬지라. 그럼으로 統一運動의 첫 方針이 中央集力이라 함니다. 統一의 第二方法은 公論의 成立과 服從 統一하는 方針의 둘재 되는 公論을 세우고 그 公論에 服從케 하자 함이 또한 重要한 問題임니다. 우리 사람들이 이 까닭에 統一이 못된다, 뎌 까닭에 統一이 못된다 하지만은 그 實狀은 公論에 服從할 줄을 모를 뿐더러 公論을 세워보지도 못하고 甲은 甲論을, 乙은 乙論을 各各 自己의 論을 主張하야 外호기만 하는 까닭엄니다. 흔이 들니는 말이 「所謂 우리의 首領이라 引導者라 하는 者들이 서로 싸홈들만 하는 때문에 統一도 안되고 일도 안된다」고 辱함니다. 만은 그런 것이 아니오 여러분은 깁히 깨다르시오. 만일 眞正한 引導者이면 眞正한 싸홈을 하는 者임니다. 누구던지 所謂 引導者가 되고서 國家에 對한 自己의 主意와 確信이 잇스면 誠忠을 다하야 싸홈을 아니할 수 업슴니다. 만일 싸호지 안으면 誠忠 잇는 引導者라고 할 수 업소. 金哥나 李哥가 各各 自己의 主張을 세워 싸홀 때에 人民된 者는 冷靜한 눈으로 그 싸홈을 잘 삷혀보아 金哥가 올흐면 金哥의, 李哥가 올흐면 李哥의 그 어느 便이던지 올흔 便으로 따라서서 그 올흔 便의 多數의 意思가 集中하야 그 오른 便 사람으로 服從케 할 것이니 이것이 닐은바 公論을 세움이외다 公論이란 것은 그 國民 多數의 公번된 意思를 가르침이외다. 그럼으로 引導者가 싸홈으로 統一이 못됨이 아니라 그 百姓이 公論을 세우고 못 세움에 잇다 함니다. 美國의 例를 드러 말하면 「루스벨트」나 「윌손」 이나 「뿌라연」이나 「하딍」이나 그네들이 다 美國의 큰 引導者요 世界的 偉人이라 함니다. 그러나 그 이들은 恒常 잘 싸홈니다. 그이들을 引導者라 偉人이라 하는 것은 싸홈을 誠忠으로 한 때문임니다. 「루스벨트」와 「윌손」 사이에는 五十年 동안이나 間斷업시 크게 싸왓소 멧 해 前에 「루스벨트」는 陸海軍을 擴張하자고 主張하고 「윌손」은 그것을 反對하야 兩方이 크게 싸홀 때에 美國百姓들은 그 싸호는 內容을 살펴 是非를 判斷하여 가지고 多數가 「윌손」 便에 섬으로 「루스벨트」는 그에게 服從하엿소. 그 後에 「뿌라연」과 「윌손」 사이에는 私分이나 公分으로 먜우 갓가운 親故이오 「뿌라연」의 運動으로 「윌손」이 大統領이 되엿고 「윌손」이 大統領 된 後에 「뿌라연」은 總理가 되엿소. 만은 「윌손」이 美德戰爭을 主張하먜 「뿌라연」은 이를 反對하야 그 總理의 職까지 辭免하고 크게 싸호다가 美國의 多數 國民이 「윌손」 便에 셤으로 「뿌라연」이 할 수 업시 그의게 服從하야 統一的으로 美德戰爭을 行하엿소 또 近間에 「윌손」은 國際聯盟會를 主張하고 「하딍」은 이것을 反對하야 크게 싸홀 때에 「윌손」 便에 섯던 多數 國民이 「하딍」 便에 옴가 섬으로 「윌손」은 그에게 服從할 수밧게 업시 되엿소. 뎌 美國百姓들은 自己의 引導者들이 싸홀 때에 덥허 놋코 「뎌놈들은 싸홈만 한다」고 引導者 全部를 排斥하지 안코 그 싸홈의 利害와 曲直을 살펴 利하고 直한 것을 主張한 引導者를 後援하야 다 그이를 服從케 함으로 統一을 일우게 함니다. 우리의 引導者도 싸혼다고 하야 그 是非와 黑白은 뭇지 안코 그놈들은 다 때려치울 놈이라」 하면 엇지 公論이 설 수가 잇겟소? 우리 사람들의 입으로 흔이 大韓의 引導者, 愛國者는 다 죽일놈이라 하니 혈마한들 다야 죽일놈이 되겟소. 또 누구던지 一生에 죽일놈의 일만하기야 하겟소? 내가 年前에 西洋新聞記者를 對할 떼에 그이들은 우리의 獨立運動을 悲觀으로 말하는대 그 內容은 서로 싸흔다 함이엇소. 내가 反駁하기를 「그대 네 나라 사람들은 싸홈을 더 만히 한다」 한즉 그이들의 말이 「우리의 싸홈과 너희의 싸홈은 크게 다르다. 우리는 싸호되 公論에 服從할 줄을 앎으로 싸홈의 죠흔 結果를 엇고 너희의 싸홈은 始作한 뒤에 지는 便이 업는 것을 보니 公論에 服從할 줄을 모르는 싸홈이라. 그러한 싸홈으로는 統一을 일우지 못하고 分裂이 됨으로 亡할 수밧게 업다」는 迫切한 말을 합데다. 여러분! 이 新聞記者가 바로 보지 못하엿다고 할가요? 우리도 남과 갓치 統一을 要求하거든 한 義兄弟的 手段으로 私交를 짓거나 交際的 手段으로 接待의 잘하고 못함과 通情을 한다 안한다 하는 그따위 手段으로 統一을 取하랴 하면 百年을 가더라도 엇을 수가 업스리다. 우리 社會의 現象을 보면 下級은 말할 것 업거니와 所謂 中流 以上 高等人物들도 國家事業의 統一을 한 交際的 手段으로 일우기를 꾀하니 그 幼稚한 것이 엇지 寒心치 안으리으. 이제부터 크게 覺悟하야 公論을 세우고 公論에 服從하는 것으로 統一의 道를 일우워야 하겟슴니다. 現下問題解決策은 國民代表會의 召集 이제 統一을 일우기 爲하야 中央에 集力함과 公論을 세우는 두 가지 方法을 實行키 爲하야 行할 한 가지 일은 「國民代表會」라 稱하던지 或 다른 名詞로 稱하던지 何如間 各地方各團體의 代表者들이 한번 크게 모히게 함이 가장 必要한 줄로 생각함니다. 웨? 첫재 各方面의 意思가 한 곳으로 集中한 後에야 各方面의 精神과 마음과 힘이 한 곳으로 集中될 것이오 各方面의 意思를 集中하려닛가 不可不 國民代表會가 잇서야 되겟다 함이외니다. 둘재에 公論을 세우려 하면 한 地方이나 멧 個 團體의 議論으로는 公論이라고 認定할 수 업고 卽國民 多數 意思를 公論이라 하겟는대 國民 多數 意思를 發表케 하려닛가 不可不 各方面 代表가 모혀야 되겟소. 公論을 세워야만 된다 하고 公論을 세울 實際가 업스면 所用이 업슴니다. 그럼으로 各方面 代表가 모히는 것으로써 公論을 세우는 實際라 함니다. 或은 말하기를 國民을 代表한 議事機關의 議政院이 잇는대 다시 國民代表會를 모힌다 함은 議政院을 否認하는 것이라, 毋視하는 것이라 하나 그럿치 안슴니다. 本是 共和政治로 말을 하면 中央機關은 國民의 輿論에 服從하고 國民各個人은 그 中央機關을 服從하는 것이오. 이제 中央機關으로서 國民의 輿論을 服從하랴면 輿論이 잇슨 後에야 될 것인대 各方面의 代表가 모혀 多數의 意思를 表示하기 前에는 輿論이 成立될 수 업소. 國民의 輿論을 成立하기 爲하야 한 때 各方面 代表가 모히는 것이 엇지 議政院을 否認한다 또는 非法行爲라고 말하리오 이것은 한 形式上理論이거니와 우리의 實質上 裏面을 들어서 말하면 이 곳에 議政院과 臨時政府가 成立된 以後로 여러 가지 紛糾와 複雜한 問題가 잇서 오다가 오늘에 그 度數가 漸漸 놉허지는 것이 事實임니다. 이 紛糾되고 複雜한 問題를 그냥 放任하여 두면 獨立運動進行에 障碍가 多大하겟고 이것들을 解決하야 時局을 整頓하랴면 各方面 代表들이 모혀 크게 公論을 세워야 될 줄로 생각함이다. 이 곳에서 議政院과 政府를 세울 때에 일을 圓滿히 하지 못한 것도 事實임니다. 西間島나 北間島나 俄領이나 美領의 意思를 몹지 안엿슬 뿐 外라 한번 무러보지도 안엇고 하물며 閣員으로 被選되는 某某 諸氏에게까지도 組織 與否를 알게도 아니하엿슴니다. 過去事는 寧恕언졍 妥協은 絶對로 必要 우리가 現存한 政府와 議政院을 絶對로 認定하지만은 過去의 不充分하게 일한 것은 自認할 수밧게 업슴니다 그때에는 草創時代이라 엇더한 境遇에 時期의 切迫으로 그러케 된 것이라고 容恕는 하겟거니와 그 不充分한 것을 그대로 固執하고 더 充分케 하기를 꾀하지 아니함은 不可함니다. 일즉 일을 始作할 때에 充分히 못한 結果로 俄領과 北間島方面에서 우리 中央機關의 存在는 認定하더라도아 中央機關에 歸順하야 協同하지 못한 것은 事實임니다. 俄領사람들이 善하야 그럿턴지 惡하야 그럿턴지 愚하야 그럿턴지 智하야 그럿턴지 그것은 別問題이고 그갓치 分裂되여 잇는 것은 放任할 수는 업지 안슴니가 ▷第四面에◁ 내가 일즉 國務總理代理로 잇슬 때에 俄領과 妥協을 짓기 爲하야 玄楯 金聖謙 等을 보내여 妥協을 進行타가 그 亦失敗를 當하엿소. 그러나 나는 조곰도 落心하지 안코 妥協하야 合同되기를 繼續하여 努力하려 함내다. 우리가 俄領과 中領의 多大數의 國民을 除하여 노코 누구로 더부러 무엇을 지으랴 함니가? 或者 생각하기를 「우리의 獨立運動은 우리 民族의 힘으로 成功키 不能하고 美國이 도와주고 안도와주는데 달녓다」 하야 美國만 쳐다보고 잇슬넌지 모르거니와 이것은 獨立精神에 違背일 뿐더러 設或 美國의 도음을 밧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赤身으로 외릅게 서서 손을 벌니면 美國이 그갓치 어리석어서 멧 個人만 보고 援助를 하여주겟는가? 남의 도음을 밧기를 願하더라도 몬져는 自體가 統一하야 民族的 運動임을 實現식혀야 될 줄을 깨다릅세다. 或은 말하되 「이것 뎌것이 다 쓸데업다, 도라오거나 말거나 멧 사람이라도 막 밀고 나가면 된다」 하니 웨 이갓치 어리석은 勇氣가 過度함닛가 우리가 設或 멧 百萬의 軍士와 멧 億萬元의 資本을 가지고 勢力이 宏壯하야 反對者를 能히 잡아다가 斬之砲之할 수 잇다 하더라도 自民族을 威力으로 누르, 아니하고 德義로써 和冲하야 歸順하기를 圖謀하겟거늘 한 分의 實力이 업서 가지고 덥허 노코 「適法이건 非適法이건 너히 俄領놈들은 와서 服從만 하라」 하면 엇지될 수가 잇스리오 이럼으로 한번 크게 모혀 서로의 諒解를 要求하며 公論을 세워 一致協同할 道를 試驗하자 함이외다. 이 國民代表會促進에 對하야 反對하는 이들의 意思를 보건대 一方에서는 「이 國民代表會는 誰某를 擁護하기 爲하야 한 手段으로 하려는 것이니 反對하자」 하고, 또 一方에서는 「誰某를 내여쫏기 爲하여 行하는 手段인즉 反對하자」 하니 各各 自己의 뜻을 일우지 못하게 될가 하야 國民代表會를 졉허하는 줄 암니다. 나의 主張하는 바는 擁護主義者나 反對主義者나 假令 安昌浩를 逆賊이라고 論하는 者나 忠臣이라고 論하는 者나 엇더한 主張, 엇더할 論을 가진 者를 勿論하고 各方이 다 모혀들어 한번 크게 싸화 큰 解決을 지어 크게 平和하고 크게 統一하여 가지고 軍事運動이나 外交運動이나 모든 運動을 一한 步調로 統一進行하기를 바람이외다. 여보시오-여러분! 우리 國民의 程度가 이 國民代表會 한번 할 만한 自信도 업다 하면 獨立運動은 엇지하려 함닛가 넘어 躊躇하지 말고 되도록 一致하게 努力합세다. (第一回演說 끗)

1921년 5월 21일 4면 '國民代表會促進의 第二回 大演說會'
국민대표회의

1921년 5월 21일 4면 '國民代表會促進의 第二回 大演說會'

安昌浩氏의 演說이 잇슨 後 三百餘의 贊同者中으로서 期成會組織委員을 選擧함 지난 十二日 ○○堂에서 開하엿던 演說會를 本月十九日 下午七時에 다시 ○○堂에서 繼續하야 開하다. 四百餘의 男女同胞가 滿堂한 現席上에서 發起人中 金秉祚氏의 司會로 開會를 宣한 後 一同이 起하야 愛國歌를 唱하고 祈禱를 行한 後 安昌浩先生의 演說에 入하다. 先生은 滿場의 拍手聲裏에 登壇하야 前日의 演說을 繼續하야 國民代表會의 必要로부터 國民代表會의 進行上에 關한 諸般難關의 點을 擧하야 一一히 論破하야 一般의 腦裏에 徘徊하던 疑雲은 一消되고 光明의 道가 眼前에 開케 되엿다. 先生의 演說이 끗나자 主席은 座中을 向하야 此에 贊同하는 이는 住所와 姓名을 記하야 달나하매 座中으로부터 거의 全部가 此에 應하니 前後兩回에 總히 報名한 이가 三百餘名에 達하엿다. 일로부터 事務進行에 入하야 몬져 臨時席長 一人을 擇定한 結果 呂運亨氏가 被選하고 다시 徐丙浩 金輿濟 兩氏를 臨時書記로 選任하다. 其後 國民代表會의 期成會를 組織하게 되여 組織委員 二十人을 選擧하기로 되엿는대 金秉祚, 李驛, 崔東旿, 韓鎭敎, 尹顯振 五氏로 推薦委員을 定하야 委員候補者 四十人을 薦케 하야 그 中에서 二十人을 選擧하기로 되다. 推薦委員이 薦擧한 候補者 四十人中에서 投票한 結果 左의 二十人이 當選되다. (無順) 呂運亨 李鐸 安昌浩 徐丙浩 金秉祚 金奎植 南亨佑 宋秉祚 崔東旿 尹顯振 李英烈 都寅權 金萬謙 金澈 梁瀗 元世勳 羅容均 李圭洪 韓鎭敎 李元益 選擧가 終하고 閉會하니 時는 同十二時二十分이더라.

1922년 5월 20일 3면 '國民代表會籌備委員會宣言'
국민대표회의

1922년 5월 20일 3면 '國民代表會籌備委員會宣言'

各地에서 選出한 國民代表會籌備委員會委員들은 這間上海에서여 國民代表會籌備에 關한 事務를 執行하여 오던바 지는 十日同各委員의 名義로 一宣言書를 發하엿는데 그 全文이 左와 如하더라 우리 獨立運動의 過去를 回顧하건대 四年前獨立宣言當時에는 一朝에 宣言書가 配布되고 萬歲聲이 니러나매 미리 約束한 적도 업것만은 二千萬民衆은 異口同聲으로 一齊히 響應하엿나니, 이는 純然히 半萬年遺傳의 自由精神과 十年間含蓄된 獨立思想이 固有한 本態 그대로 發表됨이라 萬種草木이 春風을 맛나매 先後를 爭하여 가면서, 다 各各서 절로 萌芽를 發함과 如하야, 무슨 約束이나, 무슨 計劃이 업섯슬지라도 足히 大同一致의 壯觀을 呈함이 不難하엿거니와 其後實際運動에 至하야는, 그리 單純하고 容易한 것이 아니니, 단단한 約束과 相當한 計劃이 잇셔야 할것이오 多大한 힘을 準備하며 無數한 生命을 犧牲하여야 할것이라 然面이 實際運動에도 這間애 內地方面으로는 敵의 肝膽을 서늘케한 炸彈運動갓흔 壯擧와 墾島方面으로는 數千名의 敵兵을 射殺한 快事가 업슨 것은 아니나, 그러나 二千萬國民이 統一的指揮下에셔 同一한 步調로 規模的, 組織的으로 秩序整然하게 進行하여본 적은 업섯스며, 라서, 갓흔 獨立黨으로셔 서로 主見이 背馳되고 意思가 衝突되는 點에셔 紛糾와 軋轢은 日復日甚하여가매 民心은 漸漸澳散의 傾向이 잇고 軍人은 南北滿洲, 西比利亞의 荒涼한 曠野에셔 彷徨하고 잇슬 임은 可히 掩蔽하지 못할 事實이라 二千萬同胞여 國家의 運命은 國民全體의 解決을 要하나니 萬歲運動卽思想發表期를 지내고 實際運動에 入하려 하던 劈頭에 際하야 應當일직이 「우리 國民의 大結束」이 한변 업지 못하엿슬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時에는 覺悟가 생기지 못하엿던지 事情이 許하여야니 하엿던지 何如間임의 事實을 일우지 못한바에는 旣往에 溯及할수 업는지라 追悔한들 한 무엇하리오, 우리는 다만 過去數年間經驗에 依하야「國民의 大結束」이라는 深切한 覺悟를 엇고 將來를 圖하야 運動上一大轉機를 齎來하게 된것만 前途에 至大한 幸運으로 思惟하노니 「國民의 大結束」이것은 實로 今日우리 步趣의 進退兩路를 分歧하는 點이며 우리 運動의 一切問題는 오직 此를 俟하야 解決되려하도다 於是乎遠近이 相應하고 中外가 一致되야 異口同聲으로 國民代表會를 主唱한바 昨年以來로 美, 墨, 布哇, 上海, 北京, 墾島各地에셔 國民代表會期成會가 次第成立되고 其他個人或은 團體로 國民代表會를 贊成又는 促進하 信息이 逐日답至함이 이엇치 偶然한 事이리오, 그런면 國民代表會의 實現은 可히 抑遏하지 못할 事實임을 알겟도다 이에 本籌備會는 時勢의 趨向과 民衆의 要求에 應하야 過去의 모든 紛糾錯雜한 問題를 解決하고 未來의 完全確實한 方針을 樹立하야 우리의 獨立運動이 다시 統一的組織的으로 進行되게할 兩大案件下에셔 國民代表會召集事項을 籌備할 責任을 負擔하고 成立되엿도다 然而本籌備會의 成立이 발셔 一年이 近하도록 아직지 代表會를 召集하지 못함은 諸般四圍事情의 不許함을 因함이라 實로 遺憾千萬이어니와 이제는 時期가 임의 濃熟하엿고 事勢가 더 遲滯하기를 容許하지 아니하는지라 急速한 期間內에 代表會를 召集하기로 하고 爲先우리는 國民代表會를 籌備하난 主旨가 何에 在한 것을 中外에 宣布하야 二千萬同胞의 同聲相應을 求하노라

1922년 5월 20일 4면 '國民代表會籌備處諸君의게 告하노라'
국민대표회의

1922년 5월 20일 4면 '國民代表會籌備處諸君의게 告하노라'

時局 岌業 國步가 ■難한 危■■■髮의 今日을 當하야 各地各團體의 同志들이 一次大會하야 過去의 紛糾錯雜한 諸問題를 討議解決하며 將來의 活動實行할 大方略을 硏究確立함이 目下急務임은 本報가 累次我同志의게 提唱動議한 바어니와 以來時勢의 要求에 應하야 國民代表會籌備處가 出現함은 吾人의 가장 欣喜贊成하난바라 그런데 同籌備處가 創立된지 벌셔 將來一年이 되도록 會務의 進行이 遲遲함은 何故오「하딩」君의 主唱한 太平洋會議와 「레닌」君의 提議한 遠東民族會議난 벌셔 其幕을 終한지 幾月이오 中國의 國是會議도 임이 其會을 開한지 數天이라 此等會議 我族이 國民代表會하자는 發論以後에 發芽한 者로 벌셔 其果가 結하엿거늘 엇지타 大韓民國代表會난 이러틋 難産인가 籌備員의 無誠意함인가 各團體가 不贊成함인가 其主旨가 不徹底함인가 或時機가 不適當함인가 海陸의 交通이 不便하다하드래도 這間一年의 歲月로난 能히 地球를 幾回라도 巡還할수 잇섯고 經濟가 困難하야 旅費의 問題라 하드래도 假令團體各員이 合心集力하면 區區한 幾百元의 金錢을 各其辦備할 能力은 綽綽有餘할지라 原來國民代表會를 開催하자는 本意가 時局의 切追한 危機에 處한 吾儕가 其救濟策을 講究討議하자함이여늘 엇지 悠悠하리오 獨立運動의 運命은 累卵이 危하고 民族生活의 塗炭은 燒眉에 急한지라 一刻이 三秋갓고 一年이 千年갓거늘 年號의 爭論으로 半年以上을 費하야 비로소 宣言一張을 頒布하는 諸君의 苦衷도 斟酌못하난 마는 아니나 무릇 天下를 動코져 하난 者난 반다시 몬져 스사로 動하나니 籌備處諸君이 만일 冷落한 態度와 放任의 擧動을 가진다 하면 엇지 遐邇各團體에 對하야 來會를 請하기가 未安치 아니하리오 대개 今日大韓民國의 處地가 非常하니 敵의 束縛中에 在한 內地同胞나 天涯海角에 淪落飄流히난 同志愛의게 一一히 通知하고 面面히 交際하야 旣成國家의 代議士擧行하난 것처럼 眞實로 名實相副의 國民代表會를 召集하기난 到底히 不可能인바 可及的■外■方에 同志들을 多數히 會集케하야 노코 互相握手하야 披肝瀝膽하고 彼此提携하야 잡 血嘗膽하자하나 此擧에 對하야 多少의 異論者도 不無할지나 그러나 大同團結의 急務를 覺悟한 志士와 共和民治의 大義를 曉한 民衆은 반다시 깃버 協力하야 하로밧비 斯業의 實現을 期圖할줄로 밋노라 그런고로 吾人은 諸君의게 對하야 一層奮發努力을 勸하며 아울러 空然히 歲月을 遷延치 말고 急急히 具體에 入하야 滿天下大韓男女의 代表者會議를 速速히 開催케 하기를 切切希望하노라

1923년 6월 13일 1면 '代表會議破裂眞相'
국민대표회의

1923년 6월 13일 1면 '代表會議破裂眞相'

國民代表會議內에 所謂 創造, 改造의 兩派가 잇서 오래동안 相持하여 옴은 다 아는 바이어니와 勞働問題가 終了되기까지 保留하엿던 時局問題가 다시 上程되여 申二鎭 等이 提出하엿던 大韓民國臨時政府의 組織, 憲法, 制度 其他를 實際 運動에 適合하도록 改造하자는 提議案을 다시 討論케 되니 自初로 此를 反對하던 側에서는 該案을 棄却하고 時局問題는 더 討論 말고 곳 國號 年號 等을 討論하자고 提議하야 此가 受理되다 ▷各代表의 分裂 同改造案으로서 大局統一의 唯一한 方策으로 알어 오래동안 奮鬪하여오던 代表들은 此以上에 더 나갈 길이 업다 하야 金東三, 裴天澤, 金衡植, 李震山 等 四氏는 不統一의 理由下에 去十五日 會議에서 各該本團體(西間島 韓族會와 軍政署)의 召還에 依하야 脫退되고 其翌十六日에 趙尙燮, 趙尙璧 等 四十二氏는 統一의 唯一方針인 改造案이 棄却되고 國號 年號를 새로 定하면 此는 一民族에 兩個 國家를 形成하야 可恐의 禍根을 植하는 것이니 이 現狀으로는 會議를 더 進行할 수 업다는 通告文을 發하고 出席지 아니하다가 同二十五日에는 다시 四十五人의 連署로써 小數 代表의 偏派的會議는 國民代表會議로 認치 안노라는 第二次의 通告文을 發하엿스며 安昌浩氏도 非公式會議로써 兩方의 圓滿한 妥協을 求함은 可하되 一部의 代表만이 그냥 正式會議를 進行하야 國號 年號 憲法 等을 作定함은 不可하다는 通告文을 致한 後 出席지 아니하엿고 ▷政府와의 交涉 自初로 新建設을 主張하던 代表 四十餘人은 그냥 會議를 進行하야 改造案棄却의 提議난 此를 決定하고 國號討論에 入하엇스나 多數 代表가 出席지 아니하는 現象대로 그양 會議■進行함은 不可하다는 論이 紛紛함으로 在席 代表들은 그 幹部로 하여곰 改造派의 分裂되는 根本問題인 政府問題를 先히 解決케 하기로 하먜 尹海 等 數氏가 盧伯麟氏로 더부러 會見한 結果 一時는 妥協의 道가 잇겟다고 傳하다가 臨時政府側意思의 不滿足으로써 兩側의 交涉은 仍히 缺裂되엿더라 ▷非公式懇談會 退席하여 잇는 改造側代表들은 創造側과 政府側의 意思만 合致되여 兩個 機關이 存在케 안되고 統一만 된다면 無條件 服從하겟노라 하면서 觀望하고 잇더니 政府와의 交涉이 澀滯되고 在席 代表들은 그양 會議를 進行하려 함으로 朴春根 等 七代表의 主催로 지난 三十一日과 一日에 兩方 代表의 懇談會를 開하고 妥協의 道를 討論한 結果 在席代表와 退席代表 中으로 各三人式의 委員을 擇하야 政府職員으로 더부러 三方會議를 하야 好善한 方法을 求出케 하엿스나 맛츰 政府에서 自體의 態度를 임의 決定하엿스니 此를 公布할 뿐이오 다시 三方會見의 必要가 업다 함으로 三方會議는 그만 停止되다 ▷事後三方會議 在席代表들은 다시 더 妥協의 道를 待할 必要가 업다 하야 지난 三日에 開會하고 國號는 「韓」으로, 年號는 「紀元」으로 定하엿더라 政府側에서는 그제야 大事가 그릇된 줄 알고 지난 四日 午前과 午後에 在席代表와 退席代表中으로 各幾人式을 招請하여 會議한 結果, 退席代表들의 調停으로 因하야 多少의 合致點을 發見하야 庶幾의 ■이 有하더니 其後 在席代表와 政府側에서 오히려 此를 容認치 아니하고 在席代表들은 그냥 會議를 進行하엿더라 創造派의 最終幕 創造派의 最後 會合인 지난 七日 會議 席上에서 李靑天는 今日에 統一이 못되는 이 會議에는 더 參席지 아니할 뜻을 聲明하고 退席하고 朴春根, 禹鐸, 朴應七, 金鼎夏, 林源, 崔成弼 等 九人도 如此 偏派的 會合에는 參席지 아니할 뜻의 通告書를 보내고 全部 出席지 아니하고 其外에 尹海, 申肅, 元世勳, 吳昌煥, 金宇希, 朴宗根, 朴健秉, 姜九禹, 張鵬翼, 許東奎, 姜受禧, 李翰信 方國春, 崔大甲, 白洛鉉, 太龍瑞, 金鍾, 徐丙浩, 柳善長, 朴京喆, 韓承羽 洪鎭宇, 方遠成, 金世赫, 安무, 鄭庚燮, 鄭南允, 李致龍, 黃郁, 朴健, 呂仁斌, 林병극, 崔준형, 柳藎, 申日憲 金晉奎, 崔忠信, 盧武寧, 鄭鶴壽 等 三十九人이 出席한 秘密會議에서 새로 制定하는 憲法을 通過하고 니어 人選을 行하엿는대 憲法은 共十八條의 委員制로 되고 人員은 國民委員으로 三十三人, 國務委員으로 四人, 顧問으로 三十一人을 選擧하고 곳 閉會하엿더라

상해 임시정부와 해외 동포사회의 관계성: 한인 디아스포라의 정치적 구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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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대한독립을 염원하는 만세시위의 물결이 국내외로 확산되는 한편, 독립운동을 보다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형태로 전개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대표할 정치 조직을 수립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되었다. 이에 따라 1919년의 봄을 거치며 지역별로 서로 다른 임시정부 구상과 조직이 이루어졌다. 서울에서는 국내를 기반으로 한 한성 정부가 조직되었고, 연해주에서는 무장투쟁 세력을 중심으로 대한국민의회가 결성되었으며, 중국 상해에서는 해외 망명 독립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들 조직은 각기 다른 공간과 조건 속에서 출발했지만, 독립이라는 공통의 목표 아래 민족을 대표하는 정치 기구임을 표방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효율성과 대외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분산된 정부 형태를 하나의 통일적이고 대표적인 기구로 결집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몇 달간에 걸친 논의 끝에 1919년 9월 한성정부, 대한국민의회, 임시정부는 통합을 결정하였고, 그 결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상해를 중심으로 수립되었다. 이는 단순한 조직 통합을 넘어 해외와 국내를 포괄하는 독립운동의 대표 기구를 수립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