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22건
- 俄領同胞에게
- 吉林地方의 運動
- 俄領實記(十一)
- 紅十字 病院副長의 上海民團에서하는 講演
- 海港의 敵禍
- 敵軍이 越境하야 韓人을 捕捉코져 함
- 臨時議政院記事
- 今會議에 未決된 預算決算委託案의 運命
- 水原遂安大邱安城의 各事件으로 被捕한 二百五十七人도 함께 敵의 預審이 終結되다
- 尹琦燮氏等의 提出한 軍事에 關한 建議案이 一人의 反對가 無히 最終日의 議政院을 通過하다
- 愛國金을 收合하다가 被捕
- 爆彈襲擊嫌疑로 四平街에서 被捕
- [外報]俄國의 排日熱은 極度에 達하였다
- [外報]勞農政府의 遠東政策
- 社告
- 留日學友俱樂部
- 民團寄附
- 婦人解放問題에 關하야
- 社會主義(八)
- 廣告
- 特告
- 廣告
俄領實記(十一)
七, 敎育
우리 民族이 東江移住한 本意는 生計上의 大打擊으론 그 困難을 免하기 爲하야 政治上의 苛酷으론 그 壓迫을 避하기 爲하야 또는 倭仇의 橫暴론 그 拘束을 脫하기 爲하야 移住한 것이다 後者는 敎育이 안이면 倭仇의 橫暴를 殺退치 못한다는 大覺悟가 有하야 新敎育을 唱導함에 熱狂者로 됨은 勿論이오 前者는 十五年 以前까지 赤手單瓢로 渡江한 그네들인 까닭에 아직 倉廩이 實치 못하고 衣食이 足지 못하야 廉恥와 禮義를 知하려고 안이하엿지만 더욱 知할 餘地도 업섯다 그리하야 子弟敎育은 背景으로 하고 다만 口腹을 謀營하기에 一生을 汲汲히 하엿다 비록 敎育을 한다 하더라도 孟孔이 打令에 지나지 못하고 甲子渡江한 後 凡三十年동안 常平通寶라는 母國葉錢을 그양 通用한 그 守舊性에 對하야 新敎育이란 三字를 勸導함은 夢中譫語에 不過하엿다
貧困하기 때문에 就學하기 不能한 事實의 그 一例를 擧하면 崔才亨氏의 幼時 苦學한 것이 實證이 되엿다 그가 俄國學校에 做業할 제 그 貧寒이 엇지 到骨하엿든지굿. 「慰神이라말」 집에 가서 乞餅療飢한 일도 잇섯고 三冬이면 履韈이 업서셔 藁草를 가지고 雪上으로 步往하다가 그 藁草를 펴고 跌足의 凍氣를 禦하엿다고 한다 또 守舊性이 深固하기 때문에 그 子弟를 俄學校에 入學식히려고 아니하엿다 그 一例를 擧하면 이러하다 紀元四二一六年 癸未에 俄學校가 처음으로 烟秋에 設立되야 入學年齡된 韓人子弟를 募集하는데 或 엇더한 父母는 此를 忌避하다가 不得已한 境遇에는 隣家子弟를 雇代하야 工夫식힌 일도 有하다고 한다 設或 그 子弟로 하야곰 就學케 한다 하더라도 그 主意가 高尙한 人格을 養成함에 잇지 아니하고 日常生活上의 將來經營으로 俄文俄語를 做得하여야 된다는 口實下에서 그 父母는 工夫식히고 따라서 子弟된 者도 工夫하엿다 마참내 初等小學이나 또 一步를 進하야 中學까지 畢業하더라도 大則 「비사리」나 「뽀리까즈시크」에 不過하고 其次는 「뽀드랴치크」와 通辭나 될 뿐이엿다 그래서 五十餘年 동안에 高等智識家가 産出되지 못함은 事實이오 다만 師範科를 修了한 사람이 몃 名이 된다고 하며 軍事敎育에 對하야도 亦是 그러하다 우리 韓制의 精神的 敎育이 刱始된 것을 論하면 保護條約한 남아에 憂國志士가 海外로 出來하야 或은 新聞으로 或은 社會로 或은 演說로의 여러 가지 方法을 採用하야 大警醒을 주는 그 時에 際하야 俄領在住同胞도 스사로 覺悟心이 生하야 金錢이 有한 者는 捐助로서 誠力이 有한 者는 協贊으로서 智識이 有한 者는 敎授로서 하야 於是乎에 靑年敎育會와 勸業會 갓흔 集團이 各地方에서 敎育普及을 專務함으로 韓式敎育의 學校가 處處에 刱立되야 異族吸化의 專制策을 濫用하는 俄官의 阻害, 禁制, 忌厭을 갓추어 堪嘗하면서 國魂을 招返하며 文化를 傳達하엿다
(一) 俄制의 敎育 우리 同胞가 渡江初頭에 烟秋가 처음 開拓되고 그를 따라 部落이 形成된 까닭에 俄校入學으로 第一步되는 崔才亨氏가 有하엿고 또 韓人子弟를 敎育할 目的으로 俄國의 官立學校도 率先設立이 되야섯다 무엇이든지 烟秋一帶가 우리 韓人의 過去 沿革史에 第一頁이라고 할 밧게 업다 그리고 俄國中學에 처음 就業한 者는 崔雲鶴 蔡東燮 兩氏라 하며 大洋大學에 처음 了業한 者는 金메프지라 하니 此人은 다 煙秋에서 埋胎生長하엿다 그러는 中에서 敎育思想이 크게 進步하야 秋風人 金鶴羽氏는 倭國遊學까지 가섯다 紀元四二四五年에 俄帝 「이코랄」의 銅像 세우는 禮式을 擧行할 제 煙秋人 金秉錫氏가 沿海州에 在한 우리 學生 一百四十餘人을 帶率하고 俄皇城에 往하야 우리 學生들이 그 聯合體操式場에서 特著한 榮譽를 得한 事도 有하엿다
(二) 靑年敎育會와의 敎育 靑年敎育會의 沿革은 以上에 略說하엿거니와 이 會의 目的下에서 內外水淸에 敎育이 크게 發展하야 二十五個所의 學校가 有하엿는데 그 中에 師範科를 設하야 敎師養成도 하고 또 中學科를 置한 事도 有하섯다
(三) 勸業會와의 敎育 紀元四二四五年에 勸業會가 刱設되고 그 會의 主人翁된 李鍾浩氏가 敎育普及한다는 會의 目的을 實行하기 爲하야 先着手로 新韓村에 韓民學校를 建築하매 俄京에 在한 李範晉氏가 海港靑年會에 임이 寄付하엿던 金千留와 李鍾浩氏의 捐下한 金五千留로써 宏傑하게 落成하엿다 그리고 各地方에 學校를 勸設하고 그 同時에 敎師缺乏을 嘆하야 北墾島 靑年을 請聘한 事도 有하섯다
(四) 全露韓族會와의 敎育 此會는 紀元四二五○年에 入籍韓人의 組織體로서 心力을 敎育上에 더욱 注重하야 松王營에 師範科를 設置할 양으로 俄貨 四萬留를 收聚하엿으나 맛참내 其志를 遂치 못하고 그 때에 李大有, 金鍾, 尹昌善, 南柄奎, 金立 諸氏의 主動力으로 花發浦에 文德中學校를 刱立하고 또 李翰榮 金立 兩氏의 發起로 普文社를 設하야 우리 民族에게 文化普及한다는 主義下에서 本國歷史地誌 等의 敎科書를 刊行하고 그남아 精神的 書類를 繼續 出版하려고 하는 中, 俄國社會黨首領 그라스노초꼬프氏가 大同情을 表하야 石版機械 一臺, 印刷用費 五千留, 또 千留 以上의 價値되는 紙物을 寄付하매 該社의 目的을 大規模로 實踐하기 爲하야 韓文繙譯에는 柳東說 金立, 俄文繙譯에는 金진보 吳와실네 諸氏가 되야섯는데 花發浦가 倭仇에게 陷落되는 그 時에 柳東說 李東輝氏 以下의 主謀人物은 다 奔散하고 그 石版, 紙物, 金錢 等 모든 것은 該地에 韓人居留民會長 張浩文이 保管하엿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