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독립운동
문화는 어떻게 나라를 구하는가
- 김구의 문화강국론과 발트의 노래하는 혁명 이야기 -
— 글. 김봉철(한국외국어대학교 Jean Monnet EU센터·발트연구센터장, 국제학부 교수)
김구는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하며, 국가의 진정한 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문화의 수준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문화는 단순한 예술 활동이나 학문의 발전만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인격과 도덕성, 교육 수준, 그리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정신적 가치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김구는 강한 나라보다 아름다운 나라, 다른 나라를 지배하거나 두려움으로 압도하는 국가가 아니라 인류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국가를 꿈꾸었다. 그는 일제강점기라는 현실 속에서, 문화야말로 국가와 공동체를 생존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고 보았다. 결국 문화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며, 공동체가 스스로 인식하게 만드는 정신적 기반이 되는 것이다.
문화적 정체성은 한국인의 역사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약화하려고 한국어 사용을 제한하고, 일본식 이름을 강요했으며, 역사 교육까지 왜곡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글과 전통문화를 지켜내며 공동체 의식을 유지했고, 학교와 종교단체, 독립운동 조직에서는 우리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며 독립 의지를 키웠다. 이는 정치적 저항 이전에 문화적 저항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한국인의 정서 속에 자리한 ‘정’과 ‘한’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더욱 깊어졌다. ‘정’은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연결하고 어려움을 함께 견디게 만드는 감정이며, ‘한’은 오랜 고난과 상처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은 감정이다. 이러한 정서는 공동체 의식과 연대를 강화했고, 결국 독립운동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독립은 단순한 정치적 해방이 아니라 공동체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끝까지 지켜낸 결과였다.
ⓒLithuanian Central State Archives
의회를 수호하기 위해 광장에 모여든 리투아니아 시민들.(1991. 1.)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에스토니아Estonia, 라트비아Latvia, 리투아니아Lithuania로 구분되는 유럽의 발트해Baltic Sea 3국에도 있다. 이곳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와 영향을 받았다. 발트는 중세 시대 튜튼 기사단과 한자동맹의 영향 아래 독일계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덴마크와 스웨덴의 지배를 경험했다. 이후 이곳은 18세기부터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는 독일과 소련이 번갈아 점령하기도 했다. 이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외세의 지배를 경험했지만, 언어와 민요, 전통 축제와 같은 문화적 요소를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켜내려고 했다. 강대국의 정치적·문화적 영향력이 강했던 환경 속에서도 자신들의 언어를 보존하고 민속문화를 이어간 것은, 단순한 전통의 유지가 아니라 공동체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행위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축적된 집단적 기억과 공동체 의식은 이후 독립운동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수만 명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합창 축제가 이어져 왔는데, 이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공동체의 역사와 감정을 공유하는 집단적 의례였다. 슬픔과 그리움, 억압 속에서도 자유를 향한 열망을 노래로 표현하는 모습은 한국인의 ‘한’과도 닮았다. 함께 노래하며 서로를 연결하는 문화는 한국의 ‘정’과 유사하게 공동체 구성원들을 묶어주었다. 소련 시기에는 러시아어 사용과 공산주의 이념이 강요되며 문화가 억압되었지만, 사람들은 합창과 민요를 통해서 자신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기억했다. 금지된 전통 노래를 함께 부르는 행위는 문화 활동을 넘어서 “우리는 여전히 이 공동체의 구성원이다”라는 선언과도 같은 의미가 있었다. 노래는 발트 사람들에게 예술이자 공동체 생존의 상징이었다.
1980년대 후반 소련의 통제력이 축소되면서, 이곳 사람들은 무장투쟁 대신 노래와 문화적 연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시민들은 광장과 축제 현장에 모여 민족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독립 의지를 표현했고, 이는 ‘노래하는 혁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래는 정치적 저항과 공동체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으며, 1989년 8월 23일에 이루어진 ‘발트의 길’ 행사는 이러한 문화적 연대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약 200만 명의 시민들이 세 나라를 연결하는 약 600km 길이의 인간 띠를 형성하고 손을 맞잡은 이 사건은, 군사력이 아니라 공동체 의식과 문화적 정체성이 자유를 불러오는 장면이었다. 이것은 오랜 시간 축적된 언어, 노래, 그리고 공동체 기억이 하나로 결합한 상징적 사건이었으며, 결국 발트 3국은 이러한 평화적 문화운동을 바탕으로 독립을 이루어냈다.
ⓒ김봉철
라트비아의 독립을 향한 발트의 길 모습

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에 있는 작품-자유(Freedom)
그들의 합창 문화는 독립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재도 이들 국가는 매년 대규모 노래 축제를 개최하며 문화를 계승하고 있는데, 축제는 수만 명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문화 행사로 발전했다. 사람들은 이 축제에서 전통 민요와 합창을 함께 부르며 독립과 자유의 역사를 기억하고, 공동체 의식을 확인한다. 이는 문화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도 전통음악과 민요, 공동체적 축제를 통해서 역사적 기억과 정체성을 이어왔는데, 어려운 시기에 서로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는 공동체 문화는 발트의 연대 정신과 닮았다. 한국의 ‘정’과 발트의 합창 문화는 모두 개인을 공동체와 연결하고, 공동체가 다시 개인을 지탱하게 만드는 감정적 기반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러한 사례들은 문화가 단순한 취향이나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는 구조적 힘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경제와 군사력은 국가를 외형적으로 강하게 만들 수 있지만, 문화적 정체성이 사라진 사회는 내부적 결속력을 잃기 쉽다. 반대로 자신만의 언어와 역사, 전통을 유지하는 국가는 외부의 억압 속에서도 스스로 지켜낼 수 있다. 한국의 독립운동과 발트의 노래하는 혁명은 모두 문화적 정체성이 민족의 자유와 존엄을 유지하게 만든 사례이며, 김구가 말한 “문화의 힘”이 실제 역사 속에서 나타난 현실적인 힘임을 보여준다.
발트 국가들은 유럽연합EU 가입 이후 빠른 경제성장과 기술 발전을 이루며 디지털 강국으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러시아와 인접한 상황에서 외부 위협에 노출되어 있고, 내부적으로도 민족 다양성을 안고 있다. 이러한 조건은 경제성장만으로는 국가 정체성이 완전히 안정될 수 없으며, 문화적 결속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발트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으로 문화와 언어가 국가 생존과 직결된 요소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교육과 언어 정책, 문화 축제를 통해서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이들의 경험은 문화가 단순한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안정과 미래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핵심 구조임을 드러낸다.
ⓒ김봉철
에스토니아 노래제전이 열린 장소
오늘날 문화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경제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고유한 언어와 역사, 전통을 잃는다면 국가만의 독창성과 공동체 의식은 축소된다. 반대로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국가는 세계 속에서도 존재감을 가질 수 있다. 최근 한국은 음악과 영화, 드라마, 음식 등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문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국가의 가치와 정체성을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가족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마음, 어려움을 견디며 희망을 잃지 않는 태도, 인간관계 속의 따뜻함 같은 한국적 정서는 세계인들에게도 보편적인 공감을 준다.
발트의 사례는 오늘날 한국이 문화강국으로 나아가는 데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들은 유럽에서도 작은 신생 독립국이지만, 자신들의 언어와 음악, 전통문화를 지켜내며 국가 정체성을 강화했다. 매년 이어지는 노래 축제와 합창 문화는 국민에게 “우리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공동체적 기억의 장이 된다. 이는 한국이 한글과 전통문화, 그리고 현대 대중문화로 국가적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모습과도 연결된다. 또한 발트 사람들이 역사적 상처와 자유에 대한 열망을 노래 속에 담아내는 모습은 한국인의 ‘한’과 닮아 있으며, 공동체적 연대와 따뜻한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문화는 한국의 ‘정’과도 유사하다. 한국과 발트는 문화적 정체성을 통해서 민족의 생존과 자유를 지켜냈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문화가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이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세계에 선한 영향을 주는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한국은 문화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평화와 인권, 상호 존중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고, 자신의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다른 문화도 존중하는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 발트 사람들이 노래와 문화적 연대를 통해서 자유를 지켜낸 것처럼, 한국도 문화의 힘으로 세계와 소통하며 국제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결국 「나의 소원」이 말하는 문화강국의 비전은 나라의 존재를 지탱하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