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메뉴버튼 퀵메뉴버튼 최상단으로 가기

임시정부의 자료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 큰 우리를 이루다
-『백범일지』와 김구의 「적소성대積小成大」 휘호-

임시정부의 자료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 큰 우리를 이루다
-『백범일지』와 김구의 「적소성대積小成大」 휘호-

백범 김구는 「적소성대」를 비롯한 휘호에 작은 실천과 연대가 큰 역사를 이룬다는 믿음을 담았으며, 문화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통합된 나라의 이상을 전했다.

— 글. 김윤주(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문화연구소)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

백범 김구, 붓으로 시대를 쓰다

2026년은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으로, 유네스코에서도 이를 기리는 기념해로 지정한 뜻깊은 해이다. 그는 독립 이후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사상가였으며 문화와 예술의 힘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긴 인물이었다. 김구는 『백범일지』 「나의 소원」에서 우리 민족이 단지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를 통해 인류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인해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 김구, 『백범일지』 「나의 소원」 -

이러한 백범의 철학은 그의 글씨 속에도 깊게 스며 있다. 김구의 서예는 자신의 사상과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문화의 힘을 직접 실현한 예술이었으며 또 하나의 독립운동이었다. 그는 붓을 통해 민족의 아픔을 기록했고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나라의 미래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 가운데 「적소성대積小成大」는 백범 정신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네 글자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와 독립운동의 철학,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한 통합의 정신이 담겨 있다.

백범 김구 휘호 「적소성대」

「적소성대」 좌측부

윤봉길 의사 의거와 「적소성대積小成大」

「적소성대」는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작은 것을 쌓아 큰 것을 이룬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독립은 단 한 사람의 영웅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었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조국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던졌던 민중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행동 하나, 희망 하나, 연대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독립운동의 역사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리고 김구의 「적소성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열린 일본군 전승 기념식장에서 폭탄을 투척했다. 「적소성대」의 좌측에는 ‘대한민국 31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 재상해 홍구공원 거의 기념 백범 김구大韓民國三十一年四月二十九日 尹奉吉義士 在上海虹口公園擧義紀念 白凡 金九’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즉 이 작품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며 1949년에 김구가 쓴 휘호였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민족을 위한 실천의 씨앗을 의미했다. 그의 결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세계에 한국 독립운동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김구는 “개인이 나고 죽는 중에도 민족의 생명은 늘 있고 늘 젊은 것(『백범일지』)”이라고 하며 민족의 영속성을 강조했다. 그는 민족의 자유와 독립은 단지 정치적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생명을 지켜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명존중의 정신은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또 다른 휘호인 「인자무적仁者無敵」에서도 드러난다. 좌측에는 ‘대한민국 31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 재상해 홍구공원 거의 기념 74세 백범 김구大韓民國三十一年四月二十九日 尹奉吉義士 在上海虹口公園擧義紀念 七十四歲 白凡 金九’라고 쓰여 있다.
「적소성대」를 쓴 날 「인자무적」도 함께 쓴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인자仁者’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사람을 구하는 자이며 ‘무적無敵’은 사람을 살리려는 자를 적으로 여기고 해할 사람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구는 자신의 휘호에서 ‘無무’ 자에 卌십자 대신에 좇는 뜻의 종자를 넣어 윤봉길 의사를 따르고 기리는 뜻을 표현했다. 이는 윤봉길 의사의 희생을 인의 실천으로 바라보았던, 김구의 정신이 담긴 상징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김구에게 윤봉길 의사는 민족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던진 ‘인자仁者’였으며 인간다움을 실천한 존재였음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백범 김구 휘호 「인자무적」

떨리는 붓끝에 새겨진 민족의 시간

김구의 서예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굵고 강한 획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획은 완벽하게 매끄럽지 않다. 오히려 미세하게 흔들리고 떨리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김구는 자신의 필체를 ‘총알체’라고 부르기도 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입은 상처와 총탄의 흔적 때문에 손이 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떨림이 그의 글씨를 더욱 살아 있게 만들었다. 백범의 글씨는 단순히 잘 쓴 서예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지나온 삶의 흔적이며 시대의 상처가 남긴 기록이다. 그의 획에는 망명과 추격, 죽음의 공포와 독립에 대한 희망이 함께 스며 있다.
「적소성대」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積적’ 자는 무겁게 아래로 내려앉으며 층층이 쌓이는 느낌을 준다. 마치 작은 노력들이 시간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오랜 망명 속에서도 독립의 뜻을 포기하지 않았던 임시정부의 시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小소’ 자는 단순하지만 단단하며 마지막 ‘大대’ 자는 크게 펼쳐지는 구조를 통해 마침내 광복으로 이어질 거대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하다. 우리는 그의 글씨 앞에서 단순한 조형미를 넘어 인간의 정신과 시대의 무게를 함께 느끼게 된다.

김구가 꿈꾸었던 문화국가:「애국애족愛國愛族」에 담긴 백범의 마지막 이상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자신이 원하는 나라는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말했다. 당시 세계는 전쟁과 폭력, 제국주의의 논리 속에 움직이고 있었고 그는 “현재, 인류가 불행한 근본적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백범일지』)”이라고 보았다. 김구는 위태롭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문화와 인간다움을 이야기했다.
그는 특히 우리 민족이 가진 ‘인후지덕仁厚之德’의 정신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우리 민족을 인仁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했으니 옛날에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는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우리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백범일지』).”라고 말했다. 그는 남을 돕고 함께 살아가려는 따뜻한 마음이야말로 우리 민족 문화의 근원이며 교육과 문화가 민족의 미래를 만든다고 믿었다. 그리고 인간을 억압하고 경쟁만 강요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꾸었다.
이러한 정신은 그의 또 다른 휘호인 「애국애족愛國愛族」에서도 잘 드러난다. ‘나라를 사랑하고 겨레를 사랑한다’는 뜻의 이 네 글자는 김구가 평생 추구했던 민족 사랑과 인간 사랑의 정신이 응축된 글씨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휘호는 광복 이후 혼란과 분열의 시대 속에서 쓰였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가진다.
좌측에는 “대한민국 29년 11월 23일 환국 만 2주년 임시정부 주석 판공실 72세 노부 백범 김구大韓民國二十九年十一月二十三日 還國滿二週年 臨時政府主席辦公室 七十二歲老父 白凡 金九”라고 쓰여 있다. 당시 해방은 이루어졌지만 민족은 이념과 정치적 갈등 속에서 다시 갈라지고 있었고 김구는 그러한 현실 앞에서 끝까지 민족의 통합과 인간다운 나라를 꿈꾸고 있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백범 김구 휘호 「애국애족」

「애국애족」의 글씨를 보면 굵고 강인한 획 속에서도 깊은 따뜻함이 느껴진다. 첫 글자인 ‘愛애’는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흐름을 잃지 않는다. 이어지는 ‘國국’자는 무겁고 안정감 있는 구조를 통해 공동체의 중심을 상징하는 듯하며 마지막 ‘族족’자에 포함된 㫃언에서는 깃발을 굳게 휘날리며 민족 전체를 끌어안으려는 넓고도 단단한 품이 드러난다.
김구에게 서예는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일이었고 민족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의 글씨 속에는 언제나 인간을 향한 애정과 공동체를 향한 책임감이 함께 담겨 있다. 「적소성대」가 하나하나의 희생과 연대, 정신의 씨앗과 그 지향성을 보여주었다면 「인자무적」은 그에 다가가기 위해 가져야 할 우리의 마음가짐을 담고 있으며 「애국애족」은 그러한 실천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씨라 할 수 있다. 그의 유묵은 우리나라를 만든 정신의 기록을 발견하게 하는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백범의 조용하지만 깊은 당부를 느낄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