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광복 80주년 기념 국외교류 특별전시,〈A Dream of Peace, 평화를 향한 꿈〉
— 글. 강도예(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학예연구사)
전시실 입구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가 위치한 벨기에 브뤼셀 한국문화원에서 ‘평화를 향한 꿈’을 주제로 6월 18일 특별전시회를 개막하였습니다. 이번 특별전시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과 벨기에 한국문화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교류전시입니다.
1919년 4월 11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광복의 그날 까지 한민족의 정통성을 지키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세계의 평화를 꿈꿨습니다. 그 평화의 길에는 많은 유럽인들이 함께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역만리 떨어진 동양의 작은 나라의 슬픔에 많은 유럽인들이 공감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인간의 궁극적인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이번 전시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꿈꾸었던 평화에 대한 이야기와, 그동안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임시정부 사람들의 유럽 내 활약상을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유정현 주벨기에유럽연합 대사 축사
ⓒKorean Cultural Center in Brussels
김희곤 기념관장 환영사
유럽을 향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발걸음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19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파리강화회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파리강화회의에는 신한청년당 대표의 자격으로 독립운동가 김규식이 파견되었습니다. 이후 그해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마자 김규식은 외무총장 겸 한국민대표관의 전권대사로 임명됩니다. 전시의 프롤로그 부분인 〈국경을 넘고, 넘어서〉에는 당시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와 김규식의 명함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프롤로그 〈국경을 넘고, 넘어서〉
1919년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는 민주와 공화, 자유와 평등을 꿈꿨던, 대한민국의 첫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헌법인 〈임시헌장〉은 민주공화제라는 제도와 함께 평등과 자유, 평화의 가치를 담았습니다. 그 옆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9월 통합 정부를 수립한 이후 발표한 〈임시정부 선언서〉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선언서에는 일본이 우리 국토를 점령한 것은 벨기에의 국토가 일찍이 독일의 무력하에 점령된 것과 같다는 비유적인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1부 〈민주와 공화, 자유와 평등〉에서는 대한민국 국회의 뿌리가 되는 임시의정원에 대한 이야기도 다룹니다. 임시의정원에는 7명의 여성의원이 존재했습니다. 영국이 1918년, 벨기에가 1948년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한 것과 비교했을 때 1919년 임시정부가 여성들의 참정권을 보장한 것은 매우 선진적인 일이었습니다. 임시의정원에서 선출된 7명의 여성의원 중 한 명이었던 〈신정완의 당선증서〉를 통해 이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1부 〈민주와 공화, 자유와 평등〉
2부 〈이곳 유럽,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람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람들이 유럽에서 펼친 활동들을 본격적으로 소개합니다. 초창기 대유럽 활동은 파리 한국민대표관(파리위원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여할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민대표관은 『자유한국』, 『통신전』 등의 간행물을 정기적으로 발행하여 유럽 사회에 한국의 독립운동을 알렸습니다. 또한 유물 『구주의 우리 사업』에는 파리 한국민대표관 서기장을 지낸 황기환이 러시아 무르만스크에서 갈 곳을 잃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 동포들을 프랑스 스위프 지역으로 무사히 구출해 낸 일화가 적혀 있습니다. 당시 무르만스크에서 구제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홍재하로, 그 옆에는 〈홍재하의 신원증명서〉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편, 프랑스 스위프 지역에 정착한 한인들은 제1차 대전 전후 복구 사업에 투입되어 노동을 하거나, 학업과 노동을 병행해가며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재법한국민회를 결성하여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갔습니다. 〈황기환이 홍재하에게 보낸 편지〉에는 프랑스의 한인들이 파리 한국민대표관에 독립자금을 지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다음으로, 독일의 유학생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인 유덕고려학우회의 결성 소식을 게재한 『독립신문』과 유덕고려학우회가 관동대지진 당시 자행된 일제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작성한 〈일제지배 비난 성명서〉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옆에는 192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의 지시로 서영해가 프랑스 파리에 설립한 고려통신사와 관련된 자료로, 〈고려통신사 등록 확인서〉와 〈임시정부에 보낸 고려통신사 보고서〉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2부의 다음 주제인 ‘독립을 향한 간절한 외침’에서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유럽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여하여 펼친 활약상을 소개합니다. 특히 이번 전시회를 개최한 벨기에 브뤼셀에서도 임시정부 인물들과 관련된 흔적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1927년 브뤼셀 에그몽 궁전에서 열린 피압박민족대회에는 이극로, 김법린 등이 참여하여 임시정부의 승인을 요구하고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으며, 1936년 만국평화회의(만국평화대회)와 1937년 구국공약회(9개국 조약회의)에는 고려통신사의 서영해가 참여하여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2부 〈이곳 유럽,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람들〉
3부 〈평화를 위한 위대한 동행〉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평화를 향한 발걸음에 동참한 유럽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각각 한국친우회가 결성되어 적극적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홍보했으며, 임시정부의 숨은 조력자인 조지 루이스 쇼George Lewis Shaw는 중국 안둥에 이륭양행을 설치하여 임시정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였습니다. 또한 임시정부는 유럽국가와 공식적인 외교 서한을 주고 받는 등의 외교 활동을 통해 카이로 선언에 한국의 독립을 보장받는 성과를 얻어냈으며, 연합군과 함께 인면전구공작대, 독수리작전 등 공동 군사작전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3부 〈평화를 위한 위대한 동행〉
4부 〈희망의 나라로〉에서는 광복의 소식을 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새로운 나라에 대한 희망을 안고 돌아온 이야기와 그 이후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으로 어떻게 계승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뒤늦은 귀환’에서는 정부의 유해 봉환 사업을 통해 뒤늦게 그리던 고향 땅으로 돌아온 세 애국지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황기환 지사는 유해 봉환 당시 후손이 없어 무국적으로 남아 있었으며, 유해 봉환 과정에서 황지사의 등록 기준지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으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임시정부에서 정부로 이어지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비록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정신과 가치는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틀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로부터 헌법과 민주공화제라는 제도적 유산뿐만 아니라, 국호와 연호, 태극기, 애국가, 국경일과 기념일, 정부의 주요 인물들까지 고스란히 이어받았습니다. 특히 제헌헌법과 현행헌법에서도 대한민국의 원천이자 뿌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4부 〈희망의 나라로〉
이번 전시의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은 관람객들이 직접 평화의 메시지를 남겨볼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구성했습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과 가치를 보존하며 평화를 이어 나가고 있는 모습을 소개하며, 이어 관람객들이 직접 오늘날 평화를 이어 나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본 전시는 벨기에 브뤼셀 한국문화원에서 9월 5일까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며, 관람 가능 시간은 월~금 12시부터 19시까지입니다.
에필로그 〈평화를 이어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