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유럽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들의 마지막 귀환길
— 글. 안준범(국가보훈부 예우정책과 주무관)
2010년 마운트 올리벳 묘지의 황기환 지사 묘소
일제강점기 36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전개되었다. 많은 독립운동가가 머나먼 타국에서 활동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독립유공자들의 유해를 국내로 모셔 오는 것은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예우이자, 살아있는 역사를 국민에게 전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국가보훈부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국외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독립유공자 묘소 소재지 파악 및 관리상태 점검을 위한 “국외 소재 독립유공자 묘소실태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현재까지 총 374기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였으며 이 중 149위를 국내로 봉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독립유공자 묘소는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미국, 중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과는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유럽 지역에도 존재하였다. 이 글에서는 유럽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황기환·홍재하 지사의 유해봉환 과정을 정리한다.
ⓒ국가보훈부
2023년 황기환 지사 현지 추모식
황기환 지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전신인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부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독립운동을 위한 활동뿐만 아니라 유럽에 온 한국인 노동자 및 유학생 등을 돕기 위해 영국·프랑스 정부와도 교섭하는 등 사실상 임시정부의 외교 업무를 담당하였다. 또한 황기환 지사는 러시아에서 강제 추방된 한국인들이 강제 송환되는 처사를 막아내고 이 중 35명의 한국인이 프랑스로 이주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이 중에는 후술할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은 홍재하 지사도 있었다.
황기환 지사는 유럽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복귀하여 외교 활동을 이어가던 중 1923년 4월 17일 미국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하였다는 내용만 기록에 남아 정확한 묘소 위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2010년 당시 뉴욕한인교회 장철우 목사는 교회 신자 명부 정리 과정에서 황기환 지사의 인적 사항과 장지葬地가 적힌 내용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고 이에 마운트 올리벳 묘지Mount Olivet Cemetery를 답사하여 묘소 위치를 확인하였다.
국가보훈부는 2013년 묘소실태조사단을 미국 뉴욕에 파견하여 정확한 위치, 묘소 현황 및 향후 관리 방안 등을 조사하였으며, 장철우 목사 및 현지 교민단체 관계자들은 묘소 상태 낙후 및 황기환 지사가 무후無後라는 이유로 우리 정부에게 유해봉환 추진을 요청하였다. 이에 국가보훈부는 현지 법령 등을 검토한 결과 뉴욕주 법원의 파묘 및 이장 승인이 필요한 것을 확인하고 변호사를 선임하여 법원에 청원서를 제출하였으나, 2022년 뉴욕주 법원은 묘지 측 이견 등을 이유로 “재신청 가능한 기각Dismissed without Prejudice”을 판결하여 어려움에 처하였다. 그렇기에 국가보훈부는 황기환 지사 유해봉환 타개를 위한 현지 출장단을 급파하여 관할 공관 및 마운트 올리벳 묘지Mount Olivet Cemetery, 뉴욕시의회 관계자 등과 협의하였으며, 2023년 1월 31일 묘지 측과 황기환 지사 묘소 파묘 및 이장을 극적으로 합의하여 봉환 추진이 성사되었다.
국가보훈부는 황기환 지사 유해봉환 준비에 착수하여 사망 100주년이 되는 2023년 4월경 추진키로 결정하였고, 이에 3월 28일 파묘 및 화장이 실시되었으며 보훈예우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대표단을 미국 뉴욕에 파견, 4월 8일 뉴욕한인교회에서 추모식을 거행했다. 추모식 과정에서 특이할 점은 황기환 지사가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군으로 참전한 이력을 알게 된 미군 참전용사 및 뉴욕 거주 교포 참전유공자 등이 모여 조국으로 떠나는 황기환 지사를 배웅하였다. 1904년 미국으로 이주 후 약 120여 년 만에 조국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황기환 지사의 유해는 영접식을 거쳐 국립대전현충원 현충탑에서 약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환식을 거행하고 독립유공자 제7묘역에 안장되었다.
홍재하 지사는 황기환 지사의 노력으로 프랑스로 이주한 35명의 한국인 중 한 명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전장 정리 작업에 투입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재법한국민회를 결성하여 친목을 도모하였다. 또한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파리위원부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홍재하 지사는 해방 이후에도 프랑스에 거주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3·1절 및 광복절을 맞이하면 자택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한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피난민 구호금을 전달하였다. 평생 조국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갖고 노년을 보내던 중 1960년 2월 10일 자택에서 사망하여 파리 외곽인 콜롱브 시립묘지에 묻혔다.
2019년 홍재하 지사 유족 면담
홍재하 지사는 2019년에야 건국훈장을 추서하였다. 막내아들 홍 푸안Fuan Jean-Jacques Hong이 생존하여 건국훈장을 전수 받았으며 이후 주프랑스대사관을 통해 유해봉환을 요청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묘소실태조사가 예상보다 지연되었지만, 유족 측이 조속한 유해봉환을 반복적으로 요청하여 2022년 3월 유럽 지역 독립유공자 묘소실태조사단을 파견하여 독일·스위스 지역 조사 후 프랑스에서 홍재하 지사 묘소를 확인하였다. 홍 푸안과 면담 시 유족 측의 적극적인 봉환 의사를 재확인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필자가 홍재하 지사 및 황기환 지사와의 인연 등을 언급하자 홍 푸안은 반가워하며 “봉환 일자는 다르더라도 같은 묘역에 안장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에 국가보훈부는 2022년 순국선열의 날을 계기로 홍재하 지사 및 스위스 샤프하우젠에 안장된 이한호 지사(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를 동시 봉환키로 결정하였다.
홍재하 지사 유해봉환은 관할 공관과 프랑스한인회 측의 많은 관심 속에 추진되었다. 2022년 11월 9일 정부대표단이 프랑스에 파견되어 11월 10일에 거행된 홍재하 지사 파묘 전 과정을 참관하였다. 11월 11일에는 제1차 세계대전 전승 기념식이 프랑스 도처에서 거행되었는데, 홍재하 지사가 전장 정리 작업을 한 주요 격전지 스위프에서도 전승 기념식이 개최되었다. 연관 사업으로 홍재하 지사 유해는 프랑스군 장병 및 스위프시청 관계자 등이 도열한 가운데 중앙 무대에 안치되어 현지 추모식을 진행하였다. 이곳은 1920년 당시 한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개최한 역사적인 장소로서 이별을 고하기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또한 당시 한국인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옛 집터를 찾아 노제를 지내며 정든 프랑스 땅에서의 마지막 이별을 고하였다.
홍재하·이한호 지사 유해봉환은 2022년 11월 1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막내아들 홍 푸안과 프랑스·독일에 거주 중인 손자녀, 주한프랑스대사 및 광복회원, 일반 시민 등 약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되었다. 특히 이 자리에는 홍재하 지사 출신학교인 배재고등학교 학생들과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 기부금을 지원한 것에 대한 감사 및 예우 차원에서 대한적십자사 관계자 등이 대거 참석하여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11월 16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7묘역에 안장되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2023년 4월 황기환 지사 유해봉환이 성사되자 프랑스에서 맺어진 두 사람의 인연은 현재도 대전현충원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위와 같이 유럽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황기환·홍재하 지사의 유해봉환 과정을 살펴보았다. 국가보훈부에서는 조국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에 대한 마지막 예우를 다하기 위해 국외 소재 독립유공자 묘소실태조사 및 유해봉환 사업을 지속 추진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추진되는 독립유공자 유해봉환 사업은 한국 독립운동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며 국민들에게 살아있고 생동감 있는 역사로 다가올 것이라 굳게 믿는다.
2022년 홍재하 지사 현지 추모식